청년정치가 검찰개혁이 아닌 이유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1-07 10: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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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아 세계시민선언 공동대표

 

 

홍콩 민주화 운동과 연대하며 지난해 9월 프레시안과 "청년 정치는 왜 검찰개혁보다 '보이콧 뮬란'인가?"라는 기사 제목으로 인터뷰를 하자,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비난의 골자는 주로 '검찰 개혁을 어떻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냐, 네들 말하는 것만 중요하냐'는 것이었다.

비난으로부터 말해온 바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졌다. 서두에 명확히 밝히자면 검찰 개혁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청년' 정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네 청년들은 살아가며 검찰을 만날 일이 잘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총장이 누구든 그가 항명을 했든 말든, 취업을 할 수 있냐, 과로에 시달리냐 아니냐 이런 문제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네들 말하는 것만 중요하냐'는 비난에 '우리가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대꾸하고 싶다.
 

청년 정치보다 보통 정치, 일상의 정치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3개월이 지나 해당 글에 대해 다시금 시민일보에 기고를 하는 것은 그 3개월간 수많은 일이 발생했었음에도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보다 더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 그러한 현실에 어떻게 다시금 청년 정치가 관심 받을 수 있을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서이다.


항상 언론에서 보통의 청년은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중산층 이상의 남성인 것 마냥 다뤄진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삼할은 차지할, 일터로 내몰린 청년들에 대한 담론은 실종됐다. '공정성의 문제'라며 SKY 대학 입시에 대해 분노하는 청년들을 조망할 때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청년들의 박탈감은 왜 다뤄지지 않을까 항상 의문을 가진다.

예컨대 지난해 '부러진 연필'을 이야기하며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사태에 수많은 언론들이 '공정성'을 논할 때 분노를 뿜어낸 계층은 생계 걱정 없이 1년 이상 공시를 준비할 수 있는 일부의 청년들이었다. 내 주위의 청년들,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생산직으로 입사했거나 집안 사정에 쫓겨 하청 및 계약직으로 취직할 수 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해당 이슈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에 대해 오히려 분노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의 목소리는 소수의 공정성을 이야기 하는 청년들에게만 포커스를 맞췄다. 한 쪽의 목소리를 아예 지우는 것이 정말로 '공정'일까?

공정도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한국에서, 검찰 개혁을 보도하는 만큼 지워진 사람들의 목소리 역시 레거시 미디어에 실렸으면 좋겠다. '학생에게 성추행을 저지른 교수는 교단에 다시 서면 안 된다'는 명제는 무척 당연해보이지만, 무관심한 여론 속에 2015년 서울대학교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서문과 A교수가 파면되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청년들이 실수 한 번으로 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면 안 된다'는 것 역시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컨베이너 벨트에 빨려들어가 사망한 청년 김용균의 어머니는 오늘도 국회 앞에서 단식하며 안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의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당연한 명제들이 대한민국에서 실현되기 위해 누군가의 '투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검찰개혁 만큼의 관심을, 인국공 사태 만큼의 관심을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과한 것일까?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당장 내 모든 행동이 '정치하고 싶어서 저러는 구나'로 쉽게 비하된다. 차라리 정치하고 싶어서 모든 행동을 하는게 맞다고 수긍하고자 한다. 장삼이사들의 투쟁을 법으로써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과한 것인가? 내 가장 큰 정치를 하고 싶은 동력은 향상심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대한민국에 관철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듣고, 판단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청년 정치는 보통시민들을 위한 보통정치여야 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국가가 다뤄주지 않는 '폭력'으로부터 생존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정치였으면 좋겠다. 또 그것이 미시적인 일정 지역 내에서의 담론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그래서 세대만으로도 우리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컨센서스를 제공해 주는 정치였으면 좋겠다. 그런 소망을 담아 청년 담론의 전환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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