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한지공예작가 정미숙 편

시민일보 / 기사승인 : 2019-10-04 12: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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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숙 작가
고양 스타필드 아트페어에서 마주친 그녀는 고집스런 콜렉터에게 설득당해 작품을 넘기고는 아직도 개운치 않은 싸움을 끝낸 사람처럼 분이 안풀린 상태였다.

'알라딘'이라는 작품을 너무나 집요하게 탐낸 콜렉터에게 작품을 넘기기로 합의 한 후에 더욱 가속되는 '분리불안증세'를 본인은 잘 모르는 듯.

"언제든 보고 싶을때 보여 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넓은 갤러리에 아이를 풀어 놓기로 합의 했어요. 집에 가두어 놓을거면 안 보낼려고 했거든요"

자기 작품을 의인화 시켜서 말하는 그녀는 '분리불안증'을 앓는 불치의 환자다!

분리불안증은 집 또는 애착대상(아버지나 어머니 등의 양육자)과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이 나이에 비해 심해서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질환이다

유병율은 아동청소년에서 4% 정도로 생각되며, 7~8세 경에 가장 흔히 발생된다.

분리불안증에 대한 정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50이 훌쩍넘은 그녀의 상태로 보아 그 질병은 치유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여진다.

지금 지구의 대한민국에 사는 그녀의 직업은 작가다.

한지를 풀로 붙이고 다 마른 후에 다시 한지를 붙이기를 반복해서 형태를 만들고 그 구조위에 세상의 바람과 햇살과 빗방울들의 흔적들을 남기고 비로소 기쁨과 환희의 판타지를 만드는 그녀의 작업은 한지공예작가다.

그 많은 공예작가 중에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런저런 상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다.

대한민국한지대전, 한국종이공예대전, 한국공예예술가 협회에서 큰 상들을 휩쓸고 초대작가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특별한 눈으로 바라보진 않는다

그녀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작업동기와 작업태도 때문이다.

"하루최소 15시간 동안 집중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 행복하기'를 명상 합니다. 제가 지은 어떤 작품도 행복하게 웃는 모습들 입니다. 그 모습을 통해서 세상사람들이 따뜻하게 위로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로지 위로의 마음으로 작품의 '짓'을 찾습니다"

그녀는 작품을 짓는다고 말한다. 집을 짓듯이? 옷을 짓듯이? 밥을 짓듯이? 모두 아니다.

대개 소중한 것들은 '만든다'보다 '짓다'를 쓴다.

막노동 느낌이 나는 '소설을 쓰다' 보다는 시를 '짓다'를 쓰듯이.

그러나 그녀는 그런 '짓다'와 다른 의미의 '짓'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좋은 '짓' 나쁜 '짓'을 말 할때 쓰는 '짓' 이 분명하다.

'짓'은 동사인가? 아마 그럴꺼다. 어찌됐든 그는 사람들의 '짓'을 잡아 그 순간의 표정을 영원같은 공간에 널어놓길 좋아한다.

그 일이 정미숙 작업의 실체다. 그러나 '그런 짓'을 가르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배웠다. 혼자? 그래도 누구에겐가 풀칠하기라도 배워야 되는거 아닌가?

"하루 15시간 천천히 일하고 돈이 적게들어가는 작업을 찾던중에 한지작업을 해야겠다 싶어서 구민회관 수강을 하긴했어요. 거기서 한지다루는 법을 배웠지요"

그녀에겐 숨겨진 진짜 스승이 있다. 그녀는 그를 빅 베이비라 부른다.

그녀의 작품속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테마인 웃음, 그 웃음의 원천이 '빅베이비'다.

30여년 전에 만난 빅베이비는 그야말로 그녀의 인생을 충격적으로 변화시켰다.

세 살 아이를 키우는 보통엄마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빅베이비'는 너무나 '가혹한 출현'이었다.

둘 째로 태어난 '빅베이비'는 정말로 '빅프라브럼'이었다.

1993년,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 안에서 심장병 수술을 위한 준비로 생을 시작한 '빅베이비'는 간신히 수술할 수 있는 체력을 확보하고 목과 배꼽을 잇는 긴상처를 얻고 심장병을 물리치지만, 그때 침공한 바이러스에 때문에 엉덩이에서 양무릎까지 절개하는걸 보고 그녀는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그리고 실패, 동반자살에 실패한 그녀에게 신은 다시 한 번 끔찍한 유도심문을 한다.

"바이러스가 뇌를 침공했다! 이젠 어쩔래? 정미숙은 아이를 껴안고 다시 절벽에 올랐다.

''지적1급 장애라구! 아픔도 슬픔도 모를테니 다행이다. 베이비!''

그러나 그녀는 뛰어내리지 못했다. 이런 경우엔 반드시 아이를 먼저 허공에 던져야만 성공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가 아플까봐 품에안고 떨어질려고 했었는데"

빅베이비의 춣생과 함께 시작된 불치병, '분리불안증'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까지 울다가 어느 순간, 아이와 함께 방언을 터뜨렸다.

알 수없는 소리, 알 수없는 눈빛, 본 적없는 손짓, 그걸로 전부가 됐다.

지구에서 배운적 없는 말로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슬펐는지'를 말하던 두 사람은 '함께있어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 품에 있지만 빅베이비의 한 발은 아직도 신의 땅을 딛고있는 위대한 존재라는걸 왜 몰랐을까?

아이가 말 못하는걸 원망하면서 내가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그 말들을 왜 이제야 기억하게 됐을까?

갓난아이때 쓰던 그 땅의 말들은 귀가 아니라 입이 아니라 오직 눈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다는걸 어찌 이리도 까맣게 잊고 원망만 하고 살았을까?

그날 이후로 정미숙은 눈물을 흘릴새가 없었다. 눈으로 말하고 눈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 15시간을 서로의 눈만 보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요. 빅베이비가 주는 행복한 영감을 전하고, 세상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일, 그게 지금 이 작품들을 만든 이유인 거지요. 여기 보세요. 누구하나 행복 하지 않은 사람 없어요''

그녀의 작품 중에 모든 캐릭터들은 아주 다양한 표정으로 굿뉴스를 전하는 웃음이 배있다.

빅베이비는 제게 웃음과 평화, 행복을 말하거든요, 저는 그 목소리 그 이미지를 세상에 전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저 아이가 내 인생의 '사부님' 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나 오만하게 지구가 너무 좁다고 생각하고 휘돌던 젊은시절, 저를 한곳에 잡아두고 목숨걸어 지킬 것이 것이 있다는 소명을 깨닫게 해준 메신저 '빅베이비'가 제작품의 영혼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돈 안되는 미술공부는 아예 생각도 말라!"던 아버지를 원망했던 그녀는 지금, 출생부터 '고해의 바다'를 처절히 실감케 해준 둘 째 아들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얻으며 정미숙의 '인형이아기'라는 독특한 예술세계를 전파하고 있다.

"작업 2년차 부터 '이야기가 있는 인형전'에 엄청난 관심과 큰 상을 받으면서 오히려 당황했지요. 결국 아이와의 교감이 사람들의 영혼에 위로를 주는게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 후로 이어지는 수상과 100회를 훌쩍넘는 국제 및 국내 전시회, 그리고 국내 유일의 '에코랄라 세계 인형 축제'의 단독 전시관 초청전, 평창 인형박물관 상설전시 등 그녀의 10여년은 지금도 꿈 속 같다고 말한다.

"그동안 기도하던 소원이 다 이루어 졌거든요. 아이와 완벽한 대화가 됐구요. 기저귀를 차던 아이가 혼자 화장실을 다녀 오는걸 보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그리고 아이가 무사히 특수학교 졸업 했구요. 무엇보다 감사한건 아이가 아무데도 안아프다는 거지요"(너무 행복하게 웃다가 안보이게 또 운다)

"소원성취 다 했어요. 더 좋은건 아이와 얘기 하다가 영감이 오면 가슴이 떨려서 참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더 욕심을 낸다면 제 작품을 각자 떠나 보내지 않고 전시임대를 하다가 오년 후쯤엔 '정미숙인형박물관'에 다 모여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현실성이 있어보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질병인 '분리불안증세'가 치유될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가 있는 인형세계'가 더욱 더 큰 파장을 만들며 그녀의 바램처럼 세상에 위로를 전파하고 있다. 그녀가 건너 온 슬픔의 바다,고통의 바다에서 흘린 눈물 조차도 빛나는 보석이된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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