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종전선언’ 뜬금없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9-23 13: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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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은 완전히, 그리고 영구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


이는 23일 새벽 전 세계에 화상으로 중계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 내용 가운데 일부분이다.

 

문 대통령의 말처럼 한반도에서 전쟁 종식되기를 바라는 건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한결같은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시작은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한반도 ‘종전선언’”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시기적으로 지금 ‘종전선언’을 들고나오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남북관계가 냉랭한 이때,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지금, 문 대통령이 ‘나 홀로’ 종전선언을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실제로 문 대통령보다 두 시간 정도 앞서 화상으로 연설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4번째 유엔 총회 연설을 했으나. 처음으로 북한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년간 연설 때마다 북한 문제를 꾸준히 언급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변화는 김정은과 이미 두 번의 정상회담과 판문점 회동 등 3차례 대면한 상태에서 진전된 비핵화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이다. 더구나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북한이 미 본토를 위협할 신형 무기를 선보일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시진핑 주석 역시 한반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도 냉랭하다. 앞서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전쟁 위협을 항구적으로 해소하며 선열들이 꿈꿨던 진정한 광복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꺼낸 것은 뜬금없다.


물론 북미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중단된 지금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다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문 대통령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올해 한반도에 남아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선언’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선언’으로 전쟁이 종식된다면 백번 천번인들 못하겠는가마는 실현 불가능한 종전선언은 자칫 북한에 좋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 성급했다. 


특히 북한 인권에 대한 논의 없이 이뤄진 평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화를 통한 일시적 긴장 해제가 아닌 핵, 인권 문제 등을 포괄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대북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종전선언을 했다고 치자.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비핵화를 포기하고, 북한의 반인도 범죄를 허용하고, 금융과 은행 사기를 그대로 둘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절대 이루어질 수 없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이성윤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교수도 “진정한 평화는 긴장(tension)이 사라지는 것을 넘어 정의(justice)가 올 때 달성되는 것”이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발언(1958년)을 인용하며 “북한은 부정의(injustice) 그 자체”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문 대통령의 구상을 비판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종전선언’ 언급은 다분히 ‘정치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북한이 사실상 모든 대외 접촉을 거부하고 있고,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6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선언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정치적 이득’ 밖에 더 있겠는가. 부디 ‘이벤트’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금 국내 경제문제를 비롯해 부동산 문제, 실업 문제 등으로 국민은 숨통이 막힐 지경이다. 이 시기에 절실한 것은 무의미한 ‘종전선언’이 아니라 ‘경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와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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