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일천의 미국통신] 미국교육의 꽃, 사립학교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01-22 14: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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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일천 서울디지텍고 이사장


 

미국이 세계강국이 된 배경에는 강국에 걸 맞는 교육시스템이 갖추어 진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미국의 교육 시스템의 핵심일까? 가장 핵심적인 것이 민간의 역할이다. 사립학교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다. 매년 교육부문의 평가결과를 발표하는 U.S. News and Report의 평가를 보면 대학만 보더라도 최우수 대학의 절반이상은 사립학교이다. 프린스턴이나 하바드같은 학교들은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이다. 물론 공립학교도 매우 우수한 학교들이 많이 있다. 사립과 공립이 서로 경쟁하며 전체적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위한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학만이 아니라 사립학교의 경쟁력은 초중등 교육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립학교는 대학 못지않은 학비를 지불해야 한다. 모든 학교가 다 비싼 학교는 아니다. 일부는 매우 저렴한 학비를 내는 사립학교도 있다.

한마디로 미국교육의 우수성은 사립학교의 역할에 있다. 사립학교는 대부분의 운영자금을 소비자인 학부모가 부담한다. 물론 저소득층이나 경제력이 약한 가정에게 동창회나 재단의 장학금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기는 하나 사립학교는 우선적으로 소비자의 부담이다. 어찌보면 우수한 교육을 받으려면 이에 상응한 비용지불을 떠올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비싼 돈을 받아야 하는 사립학교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면 퇴출 당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학교육과는 달리 초중등 교육의 경우는 공립학교가 상당부분 감당하고 있다. 이런 공립학교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좋은 학교가 있는 지역은 집값이 비싸고 세금도 많이 낸다. 공립이라 하더라도 좋은 교육은 높은 비용지불이 필요하다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자본주의의 원칙이 교육에도 아무 저항 없이 적용되고 있다. 이처럼 돈과 교육은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돈 없다고 교육상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나치다. 그러다 보니 돈 있는 사람을 미워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교육을 받는 것조차 질투의 시각으로 보고 급기야는 귀족학교라는 이름으로 퇴출시키겠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사고 특목고 폐지 움직임이 바로 그런 예이다. 돈과 좋은 교육의 동반관계가 한국에서는 잘 이행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현 정부의 사회주의적 가치관과 맞물려 교육의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사립의 역할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으며 사립학교가 국가소유화 되어 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공립학교도 개혁의 일환으로 소위 말하는 Charter school (계약형 민간운영 공립학교)가 매우 활성화 되어가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이다. 교육도 시장 경제적 원칙으로 혁신을 자발적으로 이루려는 시스템이 더욱 확대되고 이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이 챠터스쿨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 보아도 이 시스템에 대한 긍정평가의 정도를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소위 유치원 3법이 통과되었다. 한마디로 교육의 사회주의가 일단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미국식 시장 경제적 접근이 통하던 사립유취원에 의한 유아교육이 국가주도의 획일화 된 국유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유재산인 사립유치원의 재산권도 상당부분 침해 받으며 선동된 여론에 의하여 사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엄청난 폭력이 법제화 되어 가고 있다. 언론을 통한 거짓 선동과 조작, 그리고 차등을 인정하지 못하고 교육과 돈을 연결시키기 거부하는 근성을 가진 대중들에 의해 한국의 사립학교들은 이제 점차 설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이 결과 전체적인 교육의 질은 동반하락 할 것이 뻔하며 교육의 다양성과 자유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평등을 원하는 국민들 때문에 내가 원하는 교육을 내 돈을 들여서라도 이루려는 부모들의 선택권은 아예 무시되는 것이다.

가진 자를 증오하는 혐오심리의 확대를 좌파정치인들은 잘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움은 많은 이들에게 사실을 왜곡하고 눈을 멀게 만든다. 돈을 실질적으로는 좋아하면서도 남이 돈 많이 가진 것은 혐오하는 이중성을 허용 하는 한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 한다. 우리는 돈 없는 사람을 존경하고 돈 없는 자는 옳을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이 있다. 이러다 보니 돈 버는 DNA가 형성 될 리가 없다. 미국사람들, 특히 그중에서도 유태인들은 어려서부터 돈 버는 것에 대한 교육을 잘 시킨다. 그리고 돈을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고 경제교육을 잘 시켜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에 충실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청빈낙도가 지고지선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이런 교육 하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기적이외에는 기대하기 힘든 나라가 되고 만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적은 늘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기적을 바라기 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올바른 투자를 하여야 한다.

미국도 최근의 대선과정을 보더라도 가진 자 못 가진 자의 대립구도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전통적인 미국부부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지금 미국의 가장 슬픈 시기를 보고 있다. 열심히 일하며 미국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성실한 미국이 점차 사라져 가고 게으르고 공짜로 정부의 도움으로 살아가려는 사회주의적 풍조가 확대 되어가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행태가 매우 안타깝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민주당의 급진주의자들의 출현이나 사회주의적 주장을 앞 다투어 내는 대선주자들이 일정한 지지율을 받는 것을 보면 미국도 많이 변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이러한 도전이 뚜렷한 한계를 보이고 아직 미국의 주류는 전통적인 시장 경제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교육시장에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적 주장은 의료나 사회복지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 같다. 교육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은 없다.

한국의 교육은 이제 캄캄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터널의 끝이 있을지 없을지 알 길이 없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도 소득수준에 따른 학교 선택 등 다양한 학교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동기가 있는 등 교육만 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다. 한국교육의 엄청난 재앙이 벌어진 지금 후대 역사가 어떻게 이를 평가할까? 미움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한국인들에 의해 우리는 후손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안겨주는 것 같다.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이 하루빨리 바른 선택을 하기 만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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