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의 ‘시간벌기전략’ 비루하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19-12-10 15: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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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예산안 협의는 자유한국당의 시간벌기였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이다.


그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어제 이뤄진 3당 원내대표 간 합의는 (한국당의) 하루 일정을 벌기 위한 '하루 알리바이' 과정에 불과했다는 불쾌감 지울 수 없다"며 이같이 발끈했다.


그는 왜, 한국당을 향해 이처럼 강하게 불쾌감을 토로하는 것일까?


어제 하루 동안 여의도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심재철 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문희상 국회의장과 회동한데 이어 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필리버스터 신청했던 것들은 의총 거쳐서 철회를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 약속을 믿고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에 오른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검찰개혁법을 정기국회에 상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당일 오후 한국당은 의총에서 이런 약속을 뒤집어버리고 말았다.


심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예산안 합의가 되는 걸 보고 그 때 다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형식상은 ‘유보’이지만 사실상 ‘백지화’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전날 의총에서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악법’으로 규정하면서 신임원내대표단에게 “2대 악법을 저지해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이에 화답하듯 심재철 원내대표도 경선과정에서 “패스트트랙을 반드시 저지 하겠다”며 강경대여 투쟁을 선언했다.


그런데 갑자기 당선되자마자 ‘필리버스터 철회’를 약속하면서 마치 대화와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에 반색한 민주당은 그동안 ‘4+1협의체’와 논의했던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 듯, 한국당을 향해 팔을 벌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국당은 의총에서 심재철 원내대표가 가져온 첫 합의안을 ‘보이콧’하고 말았다. 그로인해 한국당은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반면 민주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고작 ‘하루’의 시간을 벌기위한 한국당의 약속 파기가 비루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국당과의 야합 가능성을 보인 민주당의 태도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사실 한국당의 전략은 이미 그 방향이 정해져 있는 상태다. 


공천권을 거머쥐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패스트트랙을 ‘2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원내대표가 당 대표의 방침과 어긋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건 ‘친황체제’가 더욱 강화된 현재의 한국당 내부 상황에 비춰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당 관계자가 “오늘 예산안을 처리하기에는 심사 시한이 너무 빠듯해 결국 예산안 처리를 최대한 늦춰 패스트트랙 상정까지도 무한정 미루려는 게 한국당의 노림수 아니냐”며 강한 의구심을 보인 것은 이런 연유다. 이인영 원내대표가 이런 노림수를 몰랐을 리 없다. 그걸 몰랐다면 매우 무능한 원내대표다. 그는 당연히 한국당의 노림수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한국당의 ‘시간벌기’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원내대표가 의도적으로 속아주었다는 의미인데, 왜 그랬을까?


혹시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을 일부 후퇴시키려는 흑심이 있는 건 아닐까?


불행하게도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당이 ‘4+1 협의체’의 군소야당과 다른 주장을 펼칠수록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민주당이 한국당 의견을 반영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민주당은 한국당을 핑계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연동비율을 낮추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언론에 흘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민주당의 태도는 옳지 않다. 


만일 민주당이 4+1 협의체의 신뢰를 저버리고 한국당과 손잡는다면, 그것은 ‘양당 야합’으로 민주당은 ‘개혁 포기’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구적폐 세력의 ‘시간벌기’ 전략이 비루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걸 알고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끌려 다니는 신적폐 세력의 ‘꼼수’ 역시 비루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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