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웃기는 이야기] 5·16과 대학입시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0-10-13 1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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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전 명지대 부총장

 임성빈 전 명지대 부총장

 

 

1961년 5월 16일에 군사정변이 일어나 나약하던 장면정부가 무너지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고 대학정원도 대폭 줄었으며 입시제도도 크게 달라져, 실업교육을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상업고등학교, 공업고등학교, 농업고등학교 등 실업계가 소위 동계진학이라 해서 상대, 공대, 농대정원의 30%를 무시험전형으로 차지하게 되었다.

 

실업계란 본래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한 후 사회에 진출할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들에게 대학입학의 특전을 준 것은 그야말로 본말(本末)이 전도된 웃기는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또 당시 신설된 체능고사라는 것도 그것이 운동선수 선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느냐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면 보통 정도의 건강을 가진 학생이 만점을 맞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하고 체능별 점수 차도 크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총 7과목에 300점 만점인 학과고사에 대비하여 체능고사의 만점은 무려 50점이었으며 기본점수는 10점이고 등급별 기준도 높아 보통 정도의 건강을 가진 학생은 중간정도의 점수밖에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입학시험이란 성적이 비슷한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에 1점 이하의 점수 차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체능으로만 40점의 점수 차가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수석을 하다시피하고 개근을 하는 등 건강에도 이상이 없으나 운동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이유만으로 대학입시에 불합격이 되는가하면 성적은 별로인데도 체능에서 만점을 맞아 합격하는 등 입학전선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당시 필자의 면접을 보던 K 교수는 “체능을 망쳤구먼, 떨어지면 이거 억울해서 어떡하나?”라고 걱정을 했고 필자는 “대한민국에 억울한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라고 대답했었다.

 

K 교수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해 보게.”라고 격려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정원이 많이 축소된 데다 동계진학까지 생겨 일반 고등학교 출신들의 자리가 너무 줄었고 체능으로 인해 성적 상위권자들이 많이 탈락할 상황이 되자 교수들이 체능으로 인한 불합격자를 이번만은 합격시키자고 건의서를 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필자는 결국 재수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동계진학은 그 다음해에 20%로 줄었다가 그 다음해에는 없어졌고 체능 역시 다음해에는 기본점수 20점, 만점은 40점이었고 등급별 기준도 많이 낮아졌다가 그 다음해에는 없어져 이런 웃기는 해프닝은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꿔놓은 채 다행히 2년 만에 끝나고 말았다.[시민일보 = 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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