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힘, 망각하는 힘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4-05 16: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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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민 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적극적 사고방식’의 저자 노먼 V. 필은 “어제는 어젯밤에 끝났다.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다. 과거를 잊는 기술을 배워라. 오직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다.


기억이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 지식 따위를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되살려 생각해내는 것이고, 망각이란 어떤 일이나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억은 긍정적으로, 망각은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물론 기억력이 좋으면 세상을 보다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망각을 잘 하는 사람보다 행복한지는 좀 생각할 문제이다.


가을철 산에 오르면 산속 여러 동물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쉽게 볼 수 있다.


그 중 도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다람쥐와 청설모인데 이들은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서 땅속 곳곳에 도토리를 묻어둔다. 하지만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묻었던 도토리 중 95%는 찾아내지 못한다고 한다. 찾아내지 못한 도토리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싹을 틔우며 튼튼한 나무로 다시 자라난다.


이렇게 자라난 나무는 숲을 이루고 열매를 맺어 또 한 해 동물들의 양식이 되어 준다.


만약 사람이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잊지 못해서 괴롭거나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현재가 과거와 싸우는데 시간을 허비하면 미래를 잃는다. 절대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도전과 용기, 열정을 쏟아야 한다. 우리가 어두운 과거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미래를 희망으로 이끌기 위한 것일 뿐이다.


누구나 힘들어도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몰입은 고도의 정신 집중 상태로 무언가에 푹 빠져드는 경험이다. 몰입은 긍정의 에너지를 낳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힘이다.


한마디로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다.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 몰입은 그래서 뛰어난 성과를 낳는다. 하지만 진정한 몰입은 집중을 방해하는 상념과 잡념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스스로를 망각하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을 잊어야 다다를 수 있는 경지이다.


‘주고 받으라(Give & Take)’는 서양 격언처럼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베풀거나 준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주고 잊어버리기(Give & Forget)’이다. 주고 잊어버리지 않으면 집착이 생기고, 그 집착으로 인해 나는 주었는데 ‘상대방은 왜 안주지?’라는 서운함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게 된다.


남에게 받은 도움이나 은혜에 대해서는 꼭 기억하고 보답해야 하겠지만, 남에게 준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 고마운 일들과 소중한 추억만 기억하고, 실패한 일과 후회스러운 일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것도 딱한 일이지만,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고 복수만 다짐하는 것은 더욱 곤란한 일이다.


어쩌면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망각하는 힘이야말로 우리들이 살면서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듯,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빨리 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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