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화' : 출생 비밀 밝혀지다

이      름 황천우 작 성 일 2010-08-30 조 회 수 7456

출생 비밀 밝혀지다

 

 

엄마와 은영을 뒤로 하고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하숙하고 있는 형 정환의 숙소에서 시험을 치렀고 내일이면 다시 고향으로 향해야 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명수가 소주와 돼지고기를 사가지고 찌개를 끓여 놓고 형을 기다렸다. 내일이면 다시 이별을 해야 하는 만큼 형과 함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서먹함을 풀어보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었다. 정환도 밖에서 들어오면서 소주와 함께 고기를 사들고 들어왔다. 명수가 준비해 놓은 음식들을 보고 묘한 감동을 웃음으로 대신하며 크지 않은 짐 꾸러미를 명수 앞에 내려놓았다.

그를 확인한 명수도 순간 형제 사이에 흐르는 진한 정에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명수가 은근한 시선으로 정환을 바라보았다.

“시험은 잘 치렀니?”

“그저 그만하게 봤는데 결과는 두고 봐야지.”

자리를 잡으면서 잠시 시험과 관련한 대화를 나누다가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대화의 내용이 일상사로 바뀌기 시작했다.

“명수야, 그동안 네게 섭섭하게 한 것이 있다면 이해해라. 내가 너무 미안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형이 미안해 할 일이 뭐 있어?”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고맙고. 그리고.......”

이야기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앞에 있는 잔을 비우고 형에게 건넸다.

“형, 내가 왜 이 지경으로 살게 되었는지 그 이유나 시원스럽게 알고 싶어.”

정환이 명수가 건넨 잔을 한 번에 들이키고 다시 명수에게 건넸다.

“그래, 이제 너도 클 만큼 컸으니 내가 아는 대로 다 이야기해주마.”

명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일들의 실체를 확인함에 앞선 떨림, 아니 두려움이었다.

“명수야.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너와 나는 아버지가 다르다. 물론 엄마는 같지만 말이야.”

명수가 놀라지 않았다. 그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전, 그러니까 네가 일본에서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했었지.”

 

형 정환의 입에서 자신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일들이 하나 둘 구체화 되고 있었다. 명수의 친 아버지는 일본인이었고 그 모든 일의 원인이 아버지의 잘못으로 인해서 발생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마가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명수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대강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정환이 명수에게 잔을 들자고 제안했다. 명수 역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모두 빠져나가버렸고 그 기운을 술로 보충해야 할 듯한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명수야.”

“말해, 형!”

“어쨌든 아버지인데. 이참에 한번 뵙고 내려가야 하지 않겠니? 아마도 오래 사시지 못할 듯 한데 말이야.”

명수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환도 굳이 대답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듯이 물끄러미 명수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형을 봐서라도 한번 뵙고 내려가야 도리겠지?”

“그렇게 해줄래?”

“그래, 형. 그 문제는 그렇고......”

정환이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명수를 주시했다.

“형과 나의 문제 말이야.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이가 되는 거야?”

정환이 피식 웃었다.

“왜, 형?”

“우리 사이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굳이 우리 사이를 논리에 따라서 이야기하자면 복잡해지고 말이야.”

“우리 사이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 나 역시 너무나 소홀했었지. 그러나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우리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가야하지 않나 싶다.”

“그러면, 형 내가 한 가지 물어 봐도 돼?”

“한 가지뿐이겠니?”

“형은 계속해서 나를 진짜 동생처럼 대할 수 있겠어?”

정환이 다시 웃었다.

“언제는 아니었니?”

명수의 입에서 ‘그런데, 왜!’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내뱉을 수 없었다. 술이 그 입을 가로 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내려갈 준비를 마치고 형을 따라나섰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아니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에 대한 본분을 지키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저녁에 확인한 사실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에 대한 확인 차원의 문제였던지라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도 그다지 새롭게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앞에서 걷고 있는 형을 위해 또 한때 그 남자의 아내였던 엄마를 위해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이 거처하는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조그마한 양옥집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막상 그 집 대문 앞에 서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괜히 쓸데없는 짓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휘감았다. 지금 그 사람을 만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가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마치 그를 간파한 듯이 정환이 명수를 보고 있었다.

“왜, 마음이 내키지 않니?”

정환도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오히려 그러한 정환의 태도가 명수를 한걸음 더 나아가게 만들었다. 명수가 정환을 향해 어서 앞장서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정환이 철 대문을 두드렸다.

오래지 않아 젊은 여자가 나오더니 정환을 반겼다. 그리고 뒤에 선 명수에게 시선을 향했다.

“동생입니다.”

“어서들 들어와.”

얼굴에 진하게 화장을 하고 자신을 반기는 그 여인이 순간적으로 역겹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자세히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생김생김이 오밀조밀 예쁘게 생겼건만 자신의 눈에는 그저 추하게 보일뿐이었다. 엄마의 자리를 빼앗은 여자에 대한 순간적인 분노였다. 명수가 그 생각을 하며 가벼이 어깨를 떨었다.

여인의 안내로 내실에 들어서자 조그마한 방에 누워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이미 그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뒤덮여 있었다.

명수가 다가서자 누워 있는 남자의 시선이 잠시 명수를 보는 듯싶더니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정환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명수에게 향했다.

명수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표정 없이 남자를 주시할 뿐이었다. 황급히 여자가 남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왜요,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여자의 물음에도 남자는 아무런 답이 없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 안쓰러운 듯 명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명수가 정환의 얼굴을 힐끗 보더니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정환이 급히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뭔가 귀엣말을 속삭였다. 그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정환 역시 명수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대문을 나서자 둘은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은 전차 역까지 이어졌다.

“명수야!”

명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쨌든 고맙다.”

명수가 대답 대신 웃음을 보냈다.

“서울역까지 바래다줄까?”

“아니야, 형. 전차타면 바로 서울역까지 갈 텐데. 그냥 나 혼자 갈게.”

정환이 명수의 생각이 옳다고 여겼는지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는 순간 저만치에서 전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환이 명수의 곁으로 다가섰다.

“명수야. 우리 역사의 불행했던 기억으로 묻어두자.”

답을 하지 않은 명수가 전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박힌 듯한 형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우리 역사의 불행했던 기억을 되뇌고 있었다. <계속>

 

* 가야할 길이 멀어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 부분(초, 중, 고 학창 시절)은 생략하였습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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