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소금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6-12 20: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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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재 완 국회의원 두어달 전쯤이나 됐을까?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국립암센터의 그 유명한 박재갑 원장을 만났다. 초면인데도 필자를 알아보고 반색을 하던 박 원장은 대뜸 “박 의원님, 금연운동에 반대하신다고 들었는데, 너무 거세게 반대하지 말아 주십시오” 라며 말을 건넸다.

“저는 금연운동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의 제조·판매를 금지하자는 제안에 반대하는데요?” 라고 응답했고, 그러자 박 원장으로부터 “당장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계도기간을 거쳐 10년 후부터 금지하면 된다” 는 부연설명이 돌아왔다.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채 둘은 어색하게 헤어졌다.

그러다가 며칠 전 박 원장의 제안에 국회의원의 과반수인 170여명이 찬성의사를 표시했다는 보도를 접하곤 깜짝 놀랐다. 이처럼 획일적이고 과격한, 아니 야만적이기까지 한 제안이 수용되는 분위기라면 우리 사회의 유연성과 활력, 그리고 자율정제역량은 소진 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흡연은 당사자와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며, 꽁초 투기, 가래침 뱉기, 화재와 화상을 유발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거의 백해무익한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 제조·판매의 금지는 무리한 발상이다. 흡연은 중독성을 지니기 때문에, 일도양단의 결단을 모두에게 강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정부의 경우 1920년 이른바 Dry Act (Volstead Act)를 시행함으로써 알코올 음료의 제조·판매를 금지했으나, 밀조주와 암시장 등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에 직면하여 마침내 1933년 두손을 들고 말지 않았던가. 하물며 음주보다 중독성이 훨씬 강한 흡연을 어떻게 전면 금지할 수 있겠는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지구촌의 어느 나라도 담배의 제조나 판매를 원천봉쇄한 곳은 없다.

유독 술이나 담배만 건강에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커피나 설탕은 어떠하며, 소금은 또 괜찮은가. 건강에 나쁘니 금지하자면, 아예 소금도 팔지 못하게 할 것인가. 흡연이 끼치는 사회적 비용만큼 ‘교정적 조세(Pigouvian Tax)’를 부과해서 흡연의 한계비용과 한계편익이 일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이지, 흡연을 아예 금지하면 그 비용이 편익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대학 시절이던 1974년과 1975년 필자는 유신반대 데모의 주동·가담 혐의로 복역한 적이 있다. 죄수들에게 흡연은 당연히 금지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비닐로 싼 낱개비 담배와 성냥 알갱이가 밥에 섞여 감방에 반입되곤 했었다.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시중가격의 20배가 넘는 뇌물이 오갔다고 들었다. 영어의 몸으로 24시간 감시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운 상태에서도 피우는 담배를 무슨 수로 끊게 한단 말인가.

필자가 애연가라서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은 정녕 아니다. 옛말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기 마련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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