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자수신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7-17 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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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 국회의원 옛날 서당에서 학동이 ‘천자문’이나 책 한 권을 떼면, ‘책거리, 책씻이’라 해서 훈장 선생님께 한 턱 냈고, 훈장은 한자(漢子) 한 글자를 써서 봉투에 넣어 각각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단자수신(單字修身)이란 것인데 인성 통지표인 셈입니다.

이는 그 학동의 인성에 비추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 점에 유념하라’는 뜻에서 훈장 선생님이 압축적인 의미를 담은 한 글자를 써 준 것으로, 오늘날처럼 지금까지 공부한 성적을 수·우·미·양·가의 평어를 달아주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옛 선인들의 지혜와 운치와는 비견할 바 못됩니다.

예를 들어, 남에 대한 배려가 적고 독선적이면 어질 ‘仁(인)’자를, 매사에 성격이 너무 다급하다 싶은 학동에겐 천천히 걷는 소 ‘牛(우)’자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국민들은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단 한 글자로 메시지를 던진다면, 어떤 單字修身(단자수신)을 내릴까요?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저 자신도 부끄럽습니다만, 아마도 ‘까마귀 오(烏)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옛날 훈장 선생님이 까마귀 烏(오)자를 내리는 학생에게는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는 반포(反哺)의 효성이 있으니 이를 본받아 부모에게 효를 다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내리는 의미는 이와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건망증이 심한 사람을 질타할 때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라는 말을 씁니다.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또 고위 공직에 선출되고 나서 뭔가 중요한 초심(初心)이나 약속을 잊어버린 듯하고, 여야가 상생의 정치를 하자고 해놓고선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무심한 걸 보고서는 실망 섞인 질타로 까마귀 烏(오)를 내렸을 법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나 기아, 편견 등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이 말은 영혼의 목소리를 가졌다고 하는 시각장애인 가수인 호세 펠리시아노가 4년 전 내 공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국민들은 호세 펠리시아노처럼 우리의 정치를 보면서 적어도 정치에 관한 한 장애인이 되어, 보지도 못하거나 아예 듣지도 못하는 편이 속이 편하고 다행일 것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서민 경제가 거덜나고 등골이 빠질 판에 왜 정치인들이 무슨 과거사며 보안법에 매달려 있었는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등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국민 모두를 널리 복되게 하는 일은 정치인들이 서로가 등을 돌린 채, 외눈박이가 되어 자기 입장만 보는 식으로 해서는 곤란합니다. 경솔한 언행으로 싸움만 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러워 할 줄도 알고 신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시금 우리국민이 내릴 단자수신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는 말을되새겨 봅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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