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만나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승일씨를 만나면서 고민은 쉽게 풀렸습니다. 제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잘 생기셨습니다’ 혹은 ‘미인이십니다’ 그런 인사를 가끔 하는 편인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 미남이라고 느꼈습니다. ‘옛날에 농구할 때 오빠부대가 많았겠다’고 인사했습니다.(승일씨는 유명한 농구선수 출신입니다) 얼굴에 얼핏 미소가 비치더군요.
승일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굴 표정에서는 반가운 감정을 분명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희미하게나마 마음을 얼굴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카메라 후레쉬며 또 함께 여러 사람이 같이 갔기 때문에 승일씨의 맥박이 다소 빨라져서 서둘러 자리를 나왔습니다. 잠시 후 조용히 승일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런데 승일씨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에 ‘후보 꼭!!!’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눈동자를 움직여 어렵게 쓴 글이었습니다. 멍~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농담’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어머니 손복순 씨를 만났습니다. 승일씨 같은 루게릭 환자들은 음식비 부담이 크다는 말씀도 했습니다. 음식물이 다 수입품인데 가격이 비싸 건강보험 적용만 받아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루게릭 환자들도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안구 마우스 프로그램을 지원해 달라고 승일씨가 컴퓨터로 말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부담을 개인이 다 짊어져야 하는 지금의 건강보험체계는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박하게 호소하는 이분들을 마주 보면서도 선뜻 ‘그러겠노라’고 확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한 건강보험의 현실을 잘 알면서 그 자리에서 덜컥 약속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절절한 눈빛을 마주하고, 가슴 속으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흔쾌히 약속할 수 없는 것이 비참하고 참담했습니다.
결국, 어떤 것도 속시원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지 못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승일씨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오래 살아야 한다고, 승일씨 스스로 얘기한 것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세상과 연결된 끈을 놓지 않고 ‘희망의 날’이 올 때까지 세상을 향해 ‘나 여기 살아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고민하고 궁리해 봐도 여전히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꼬박 하루가 더 지나고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제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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