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래쉬`를 보고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06-19 19:5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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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수 희 (한나라당 의원) 최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2006년도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편집상을 수상한 영화 ‘크래쉬`를 상영했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스토리와 함께 나름대로 분석해보았다.

이 영화는 LA형사를 형으로 둔 흑인 불량배 한명이 친구랑 차량절도를 하고 다니다가 이런저런 일들에 휘말리는데 우연찮게 얻어탄 차에서 ‘LA경찰`의 기분을 건드렸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많다.

‘한국인 조진구`는 길에서 흑인불량배들이 절도하고 달아나던 차에 치여 병원 앞에 버려진다. 그런데 이 사람의 직업은 동남아인들을 인신매매하는 것이다.

2차 표적이 될 흑인 TV감독은 아내와 같이 집에 가는 길에 유색인종에 대한 강한 차별의식을 가진 LA경찰 17년차 경찰에게 걸려 이유도 없는 폭력적인 불심검문을 받고 아내는 심한 성희롱까지 당한다.

흑인불량배들의 차량절도의 1차 피해자인 검사의 아내(산드라 블록)는 흑인들에게 강도사건을 당한 후 흑인자물쇠 수리공을 보고도 화를 내고, 멕시코계 가정부를 보고도 신경질을 낸다.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범죄자가 된 흑인불량배들의 푸념, 백인사회에서 성공한 흑인의 고민거리,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경찰의 증오심, 흑인도 백인도 아닌 틈바구니에서 차별받고 있으면서 그 수가 적어 아이덴티티가 모호한 아시아인, 중남미인, 9.11 테러 이후 테러의 표적이 되고 있는 아랍계의 위기감 등이 폭발직전에 있다.

흑인불량배-형-여자동료-TV감독과 아내-LA경찰-검사와 그의 아내-흑인열쇠수리공-이란상점 주인 등은 이렇게 모르는 사이면서도 이어져 있고, 그것은 LA시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생명이라는 것, 그 존엄성이라는 것은 인종의 벽을 넘어서 지켜져야 한다는 메시지. 그 메시지는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마다 나오는 특이한 느낌을 주는 배경음악과도 맞닿아서 감성적, 이성적 울림을 준다. 그리고 불타는 자동차 주위에서 펼쳐지는 제의식과 LA에 내리는 눈은 구조화된 차별에서 벗어나 화합하는 탈주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천국이라는 암시를 준다. 영화말미에서 흑인간호원장이 아시아인과 차량접촉사고가 나자 ‘영어도 못하는 것’이라며 싸움을 벌이면서 끝난다.

백인이 다수자인 사회에서 소수자인 나머지 유색인들은 차별과 다툼의 구조를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신의 색깔을 잊어버리는 것. 구조 속의 자신의 포지션을 잊어버리는 것. 아버지와 아들이 부자관계를 떼버리고 대화를 나누는 것.

선배와 후배가, 직장상사와 부하가, 남자와 여자가, 구조 속의 포지션과 아이덴티티를 벗어버리고 소통을 할 때 탈주는 시작된다. 꼭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니더라도.

위 글은 시민일보 6월 20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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