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조삼모사’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10-01 16: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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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훈(전 국회의원) 내가 어렸을 때 고등학생 형들을 보면 굉장히 으젓해 보여서 ‘아, 나도 고등학교에 가면 저렇게 으젓해 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왠 걸? 막상 고등학생이 됐는데도 여전히 나는 유치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다 ‘아, 그래 역시 대학교는 가야 어른이 되는 거지!’라고 목표를 수정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생이 되어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부딪혀 가면서도 내가 진짜 어른이 됐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다. 여전히 앞으로 헤쳐가야 할 인생의 길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결국 ‘아, 역시 사람이 결혼하고 애도 낳고 길러 봐야 삶의 중심이 확실히 서는 걸꺼야!’라고 목표를 재수정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 두 딸들도 모두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지금까지도, 과연 내가 판단하고 선택하는 길들이 치우침 없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얘기를 들으면 이 얘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 얘기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공자는 나이 사십이면 불혹(不惑)이라 했는데, 나는 왜 이리도 미혹(迷惑)되는 바가 많은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자기확신에 찬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어느 말이 좀더 이치에 맞는지, 이 말 속에 담긴 합리적인 핵심은 무엇인지, 저 말 속에 담긴 충정은 무엇인지 따져 보기 위해서. 그렇게 사심(私心)없이 궁구(窮究)하다 보면 그나마 옳은 길을 따라 갈 것 같아서. 적어도 큰 잘못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지금 ‘수요모임’의 주축인 분들은 지난 2002년 이회창 단일지도체제를 비판하고 집단지도체제를 밀어 붙였다. 이후 1년도 안돼 자신들이 주장했던 순수 집단지도체제에 문제가 있다며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들고 나왔다. 2003년 경선 과정에서도 최병렬 대표를 지지했는데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비주류로 돌아섰다. 2004년 대통령 탄핵사태 후 박근혜 대표를 옹립하는데 앞장 섰지만 얼마 안돼 다시 비판세력으로 돌아섰다.

2005년 대통령 후보 경선규정을 담고 있는 혁신위안(案)을 둘러싸고 당내 논란이 거셀 때 이 분들은 원안 통과를 강하게 주장하여 결국 뜻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이 분들이 지금 다시 대통령 후보 경선규정의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들을 하고 있다. 여당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정치 이벤트를 추진하려 하는데 우리만 가만 있을 수는 없다는 취지다.

실수를 두려워해 아무 것도 안하는 것 보다는 실수를 하더라도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자기 주장 자체를 뒤집는 일을 여반장(如反掌)하듯 하는 것은 경우가 다르다.
우리 한나라당 안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보다 치열하게 토론되고 부딪혀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구 꼴통’이니 ‘된장’이니 하는 노무현식 어법은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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