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계획 전문가를 육성하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7-05-02 20: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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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세종대 교수) {ILINK:1} 어떤 도시나 지역의 최상위 계획과 최장기 계획은 무엇일까? 어떤 지역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지향하며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지역계획이다. 국토전체의 최상위 계획은 국토종합계획이고, 시·도에서는 시·도 종합계획, 시·군에서는 도시기본계획이 최상위 계획이 된다.

한 도시와 지역의 운명을 결정하고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제약하는 이 계획은 누가 작성할까? 작게는 수만 명, 많게는 천만에 이르는 인구를 가진 지역의 토지이용과 산업경제, 환경, 주택, 복지, 인프라와 재정에 대한 종합계획의 수립권은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종합계획이나 시·군종합계획은 자치단체장의 위탁을 받아 전문용역기관이 작성하고 있다. 전문용역기관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계획수립의 정당성은 객관성과 중립성, 과학적 분석기법의 활용능력에서 찾는다.

일찍이 하이예크(F.A. Hayek)는 <노예의 길>이란 명저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계획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고 결국에는 우리를 노예로 이르게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어느 국가나 어느 지역에서나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의 주장은 신빙성을 잃고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에서도 자유를 신장하고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계획이 필요하다는 만하임(K. Mannheinm)이나 파이너(H. Finer)의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계획이 필요하다고 해서 계획가나 계획기관의 객관성과 전문성이 우리의 자유신장과 복지증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논리실증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에 기반을 둔 객관성은 기존 체제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진보와 개혁을 수용할 여지를 지니지 못한다.

더구나 대부분의 계획들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논리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나 시민들의 참여를 막고 있다. 관료와 전문가들의 손을 통해 작성되어 발표되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공청회와 공람을 통해 최종안을 확인하고 의견을 개진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계획수립 이전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제약되어 있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 법률상 국가의 최장기 공식계획은 국토종합계획이 되어야 하고 도시의 최상위 계획은 도시기본계획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리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 민간영역의 급격한 성장과 예측능력의 한계 때문에 경제분야나 사회분야에서 계획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에서도 이러한 한계는 동일하게 존재한다.

국토종합계획의 주관기관이 건설교통부이기 때문에 경제부처나 사회부처 등을 총괄할 수 없고 국가의 종합계획으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도나 시·군에서도 도종합계획이나 도시기본계획은 건설도시국이나 도시계획국이 주관하기 때문에 시·도나 시·군의 종합계획으로서의 위상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각 지역별로 지역의 현안을 분석하고 지역의 장기비전과 발전계획을 수립할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지역계획은 지역의 발전방향을 설정하는 장기계획이기 때문에 외부의 전문기관이 풀빵을 찍어 내듯이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계획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모든 지역이 첨단산업단지나 레저도시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추진과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발전에 대한 관심 증대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역혁신협의회, 지역혁신연구회가 구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 외에도 지역문제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발적인 지역조직이나 단체도 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필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공식적인 조직 속에서 지역계획을 책임지고 수립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전문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광진구, 김천시, 진안군의 지역전문연구기관 등은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최근 몇 년간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주장하고 있는 도시계획직 공무원 채용 확대 요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도시계획직은 도시공학 등과 같은 물리적 계획 분야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사회와 문화, 정치, 행정, 환경 분야를 포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채용되어야 한다.

국경없는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지역의 역할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국가는 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일을 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국가가 하지 못하는 작은 일을 직접 수행해야 할 당사자가 지방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를 맞이하여 지역의 운명을 결정할 지역계획은 종합계획의 위상을 지닐 수 있도록 지역계획 전문기관이 담당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계획의 전문가는 전통적인 토목공학이나 도시공학의 범위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정책들을 도출해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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