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여행중 또는 체류중 갑자기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병원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는 병원 갈일 무서워서 못살 것 같다!” 이는 미국의 의료제도가 형편없기 때문이다.
가끔 영화에서 보는 응급차량과 소방차량 등의 멋진 출동 장면은 사실 그대로다.
또 헬기를 이용한 구조대원의 용감무쌍한 장면들 역시 사실 그대로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있는 엄청난 의료비용만큼은 많은 이가 미처 모르고 있을 것이다.
사람 살려놓고 청구하는 비용이 수억원에 이른다고 하면 우리는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의료비용 청구서를 살펴보면 이는 틀림없는 현실이다.
그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면, 1일 병원 체류비는 보통 $1500쯤에서 시작한다.
거기에 각종 조사비용과 의약비용 그리고 아주 하찮은 비용들까지 모두 눈더미처럼 부풀려져 있다.
더구나 응급차량 및 구조대원들의 출동비용까지 합하게 되면 말이 안되는 엄청난 액수가 나오게 된다.
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이 돈을 다 내는 경우가 드물다.
거의 보조금 신청 또는 분할납부 그리고 대폭의 할인혜택 등을 협상하게 되고 때로는 지급을 하지 않고 버티기도 한다.
게다가 환자가 저소득층인 경우라면 의료기관에서 강제로 비용을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반면, 보험 가입자들은 할인 협상이 전혀 되지 않아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그대로 청구 받게 되고 이는 또다시 보험료 인상 등의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위의 사례는 응급상황만을 다룬 것이고 이외 일반 질병에서는 상황이 또 다르다.
높은 수가의 의료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사정이 같겠지만, 보험 미가입자의 경우 의료혜택에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된다.
아무튼 위 상황을 정리해보면 의료비용 산출과정에서의 거품과 높은 의료보험의 관리비를 추측할 수 있게 되는데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총 의료비용에서 관리비로 부풀려지는 규모는 전체 규모의 약 40% 정도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런 탓에 미국 국민들조차 자신들의 의료제도를 세계 최악이라 자평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의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간 의료개혁을 내세웠던 미국의 지도자는 오바마 현 대통령 말고도 많이 있었다.
대부분은 진보성향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아이젠하워와 닉슨은 의료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공화당이었음)로부터 추진되어 왔고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30년대초 뉴딜정책의 선구자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최근의 빌 클린턴 대통령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의료개혁은 2009년인 지금까지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세계보건기구에 의해 의료체계 경쟁력 37위 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다.
미국 역시 전 국민의 건강보험 가입 노력을 소득불균형에 의한 사회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 진영의 이념 대립은 이 논제를 쉽지 않게 만들었다.
미국의 정책 연구가 에즈라 클라인은 자신의 자료집에서 “의학은 어려울지 모르나 의료보험제도는 간단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이어서 “주제 자체가 복잡하다는 인식은 현 제도를 유지하려는 세력에 의한 것이지 제도 자체 때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미국의 이념대립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국가는 국민을 전쟁과 테러로부터 보호할 뿐만 아니라 질병과 사고로부터 보호함에 있어서도 마땅히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국민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추구 권리 보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15%를 건강 보험 미가입자로 전락시키고 GDP의 16.5%(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 11%)를 의료비용으로 지출하면서도 여전히 개혁을 위한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계층간의 갈등을 정치권의 이념대립으로 확대시켜 오히려 양극화를 조장 하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비춰지고 있다.
사회 불균형을 정치논쟁화해 이득을 보려는 노력은 이제 흔한일이 되어 버렸다.
공공지출을 확대하여 빈민을 구제하자는 진보성향의 정치인들도, 또 방만할 수 있는 관리체계의 허술함을 최대한 축소하자는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도 모두 한결같이 국민건강과 행복한 삶의 추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그 누구도 상대의 목소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급진주의로 몰아대며 중도에서 멀어져 가고만 있는 게 현실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건국초기 작은 정부를 주창하고 미국을 역사상 전무후무한 채무프리 시대로 이끌었던 이가 바로 민주당을 창당한 제 7대 대통령 앤듀류 잭슨이다. 당시 기득권의 반대 세력이었던 그는 농민 출신으로 서민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국가가 미래의 후손에게 짐을 물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소득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채 발행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찬성과 반대의 입장이 모두 국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본질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슈 선점과 정쟁을 위해서 과거와 입장을 달리 하는 것은 공화당 역시 예외는 아니다.
단순히 예전과 다른 입장에 선다하여 이를 순순하지 못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전의 입장(지금은 상대당의 입장이 되어버린)에 대해 보다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입장 차이를 자신의 것은 로맨스로 상대의 것은 불륜으로만 보는 시각은 결코 순수하다고 볼 수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으로 케인시안 학파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비판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에 귀기울이며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갈 때 비로소 미국 국민은 훌륭한 의료개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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