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미덕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1-09 19: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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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오늘은 새벽부터 부산했다.

늦잠 때문에 수영강습 시간에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난감해 하는 막내아들을 위해 ‘기사’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들을 스포츠센터에 데려다 주고 1시간30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온 일이 그것이다.

스포츠센터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생각지도 않았던 분들을 만났다.

비슷한 이유로 차 안에 앉아 있던 A사장님과 B대학원장님을 조우한 것이다.

A사장님은 부인을, B대학원장님은 대학생 딸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담소를 나누다 보니 새벽잠을 설쳐가며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가장’이라고 뿌듯해진 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내나 딸을 기다리던 그 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모습이 역력했다.

기다리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차 속에 비치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정운찬 총리가 여전히 정치권을 들끓게 하고 있는 정황을 알게 됐다.

청문회 위증 건이 추가로 터졌고 교육문화위원회 국감에서는 총리의 증인채택 문제로 사흘째 공전이 거듭되고 있었던 것이다.

총리 인준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에 대한 문제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현실이 참으로 딱했다.

물론 성자처럼 완벽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우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최선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선에라도 눈길을 줘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정치판의 당리당략이 늘 말썽이다.

국민을 볼모로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결과, 국정 감시에 써야 할 시간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소모전으로 흘려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정운찬 총리와 일면식도 없지만 미국 유학파로서는 바로 우리 윗세대였고 그들이 공부할 당시만 해도 미국사회의 차별과 냉대 때문에 아주 어렵게 공부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의 어려움 속에서 개도국의 궁핍함을 딛고 경제부흥을 이룩한 우리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감수해야 했던 상흔은 결코 만만치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런 상처를 놓고 잘했느니 못했느니 지적하고 들쑤시는 건 아픔을 확대재생산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포괄적인 평가 결과로 보자면 정 총리는 틀림없이 유죄다.

솔직히 나 역시 정 총리를 둘러싼 여러 의혹이나 그의 처신 중에서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많다.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은 대목도 많다.

최근까지 정총리가 쓴 글을 발견할 때마다 정독을 거듭할 만큼 좋아했던 입장으로 봐도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심정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먼저 쳐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려보자.

그런 기준이라면 우리 중 정총리에게 돌을 들이댈 자격이 갖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억눌리고 짓밟히면서 그 고단함을 이겨냈던 민초들은 몰라도 어떤 형식이든 기득권을 얻기 위해 왔다 갔다 했던 사람들 중에서는 아무도 돌을 들 수 없으리라 단언한다.

어쩌면 정 총리는 내심 자신을 닦달하는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나를 쳐 봐라’ 하는 심정일 수도 있겠다.

‘살아오면서 도둑질 빼고는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해 봤다. 그건 나뿐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었고 당시로선 유일한 생존 법칙이었다’

어머니께서 자라는 우리들에게 종종 들려주시던 이 말씀을 팔순을 넘기신 지금까지도 되풀이하실 정도니 어려움에 대한 기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어머니 말씀대로 치열한 생존경쟁의 질곡을 헤치고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날 이만큼의 위치에 오르게 되기까지 우아하게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총리의 그늘진 모습도 따지고 보면 그 같은 환경의 시기를 거치면서 불가항력으로 형성된 시대적 부산물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 총리로부터 ‘정상참작’의 여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총리 본인이 스스로의 오류를 고백하고 나서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어려움을 고해성사하고 마무리 짓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대한민국 최고 지성인 서울대학교 총장 출신 총리의 자존심과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차피 다수의 국민이 선택한 정권이 국정운영을 더 잘해보겠다는 취지로 낙점한 사람인 이상, 그를 논쟁의 중심에 세우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스스로를 완성해가느냐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후로 도출되는 성과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그런 만큼 이제는 갈등보다는 관용의 미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해 주자.

그리고 기다려보자.

나 역시도 돌을 쥐기는 했으나 내려치지는 못하는 입장임을 고백한다.

우리 윗세대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덕분에 우리가 이나마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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