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에 대한 특수목적고 분류 자체를 없애고,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고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외고 개정안이 생각보다 강한 후폭풍을 양산하고 있다.
외고 관련 논의들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른 주장만 무성하게 쏟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 격인 학생과 학부모다.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으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눈에 보일 정도다.
“홍총장님은 젊었을 때부터 외고 교장을 지낸 경험이 있는 분이니 어떻게 해야할 지 좀 알려주세요”
중학생 자녀를 둔 한 지인이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며 비명처럼 건넨 말이 내게는 화두가 됐다.
나로 하여금 교육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작금의 ‘외고사태’에 대해 어떻게든 해법을 고민해야 할 의무자의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던 것이다.
물론 이 문제가 일도단마식으로 해결을 볼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또 어떤 해결책이 제시된다 해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해결의 실마리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몇 가지 평소 생각해 온 바를 제안하고자 한다.
교육의 수월성과 평준화 문제는 교육정책을 논의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딜레마다.
현실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두 조건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화해할 수 있느냐가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본다.
한국사회에 있어서 교육의 목표는 일류대학 진학에 목숨을 건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평가 기준이 그저 일류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느냐 하나로 직결돼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평소에도 교육을 논할 때마다 목의 핏대를 세워가며 주장하는 대목이지만 이른바 일류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문호를 넓히고 족집게 과외 등 이른바 사교육이 힘을 쓸 여지를 제거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발군의 해법이 나온다 해도 딜레마에 빠져있는 우리 교육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치유하지 못하는 한 형태만 달리하는 제2, 제3의 논란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경기고가 독주하던 자리를 지금은 대원외고가 차지하고 있다는 판검사 출신고 분석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실제로 80년대 설립되기 시작한 이래 90년대부터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외고가 입시경쟁과 사교육을 팽창시키는 주범이라는 눈총이 쏟아졌던 게 사실이다.
교육학자들도 이로 인해 과거 평준화 시대보다 교육의 불평등 구조가 훨씬 더 심화됐다고 이구동성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예전엔 그나마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었지만 요즘은 유치원 때부터 사교육 뒷바라지 없이 이른바 명문 외고 진학은 꿈조차도 꿀 수 없게된 게 우리교육의 적나라한 현실인 것이다.
지금의 외고 행태를 보면 당초 설립 취지와 많이 어긋나 있는 게 사실이다.
외고는 단지 좋은 입시 학원 정도이지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외고폐지가 문제해결의 단초를 제공하게 될 거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외고를 없앤다고 해도 과학고든 영재고든 이름과 형식만 달리한 또 다른 특정학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사회 전체가 일류대학 쏠림 현상을 유지하고 일류대학이 자기 학교만 염두에 두는 이기적 자세를 수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책도 일시적인 대중요법에 그치게 될 뿐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는 게 분명하다.
외고 폐지가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요소는 결코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외고폐지로 기대할만한 한 가지는 있다.
과거 경기고를 평준화함으로써 이른바 대한민국 곳곳에서 경기고 브랜드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경기 학연’의 맥이 끊겨 그 위용과 영향력이 급격하게 저하된 것처럼 이른바 명문 외고로 인한 인맥 등 학벌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학연, 지연을 출세 수단의 으뜸으로 추종하는 대한민국의 병폐를 약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약간의 기대가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환경을 저해하는 독버섯 제거 차원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개인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일류대학들이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대학의 경쟁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일류대학군이 학생이나 재정 등을 독식하는 형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세계적 대학들과의 경쟁구도에서 우리의 명성을 높이는 데 있어 어려움이 클 것이다.
구성원들의 안일함과 나태함이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의 선발 방식을 바꾸고 문호를 좀 더 넓게 개방하는 방식이 문제해결에 근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의 ‘1등급’을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 방식으로 이른 바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일류대학들이 1등급 학생들로 하여금 동등한 가중치로 혜택을 주는 입학전형방식을 도입, 공고나 상고 출신들이 연관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부여하자는 뜻이다.
대원외고에서 1등한 학생이나 의정부 경민고등학교에서 1등한 학생에게 똑같이 일류대에서 공부할 기회를 준다면 외국어 기능을 중시하는 외고 취지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굳이 외고에 목숨을 거는 경쟁 구도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결론이다.
물론 이렇게 된다면 외고 출신 등의 상대적 불만이 야기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외고 출신은 의사가 될 수 없느냐는 식의 문제제기 말이다.
그 문제 역시 입학 당시 일정 정도 제한을 하되, 1,2년이 지난 뒤 전과나 전학허용을 대폭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학간 학점교류는 물론이고 학적변경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이 자칫 어린 학생들의 인생을 스무살 이전의 잣대로 제한해버리는 위험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보다는 대학 선택권을 넓혀줌으로써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듯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기질의 특성 상 뒤늦게 기량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나중에 나름의 기준으로 새학교, 새교수 새전공 등 새로운 교육환경의 다양한 선택을 통해 자신의 특질을 접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방향으로 거듭나게 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과감한 학교 간 교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지어는 현재의 평생교육 제도 시스템을 통해 교육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실력이 갖춰진 상태라면 언제라도 일류대학을 비롯한 어떤 대학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다양성을 줘야 한다고 본다.
이렇듯 기존의 편입이나 정원제도를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해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면(개인적으로 명문대 진학이 외고 등 특정 루트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교육정책이 제공된다면 치열한 사교육 열풍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교육여건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게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일찍부터 품어왔던 생각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일류대학군의 협조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일류대학들이 앞장서서 우리 교육 현장의 묵은 병폐를 해소하는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지 않는 한 빛을 보기 어려운 제안이다.
만약 나의 이 같은 생각이 현실화 된다면 우선 당장 어려움을 겪게 되는 건 우리 경민대학 같은 군소 대학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제안을 내놓는 것은 우리 교육환경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방안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없지 않겠지만 모두가 사적 욕심에 치우치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 책임과 채무의식을 갖는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이 같은 선택이 어떤 면에 있어서 일류대학 쪽에도 양질의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모을 수 있는 기회라는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른 바 군소대학 등 평판이 다소 떨어지는 대학의 경우에도 학생들간의 이동성 개방으로 학교 전체가 업그레이드 될 수 있고 또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동인이 제공된다는 측면에서 힘은 더 들지 모르지만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보면 뛰어난 인재 발굴의 또 다른 해법임과 동시에 작금의 세종시 논란처럼 버려지고 소외됐다는 자괴감에 좌절하는 민심의 장탄식도 치유할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서울대 폐지를 주장하자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박수 갈채가 터져나온 대목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재들이 전문성이나 특성과 관계없이 명문대 진학에 목을 메는 작금의 교육현장이 대한민국 미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 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민심을 도외시 한 채 외고의 폐지, 전환, 변경... 그 어느 것을 부르짖어도 허망한 메아리에 그치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란다.
내 안에 들어있는 교육의 열정을 이 짧은 블로그 지면에 다 토로할 수는 없다.
단지 물꼬를 트는 대안제시 차원의 의미로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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