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ㆍ이적 네트워크 콤플렉스 주어진 자리서 열심히 일해 극복"

안은영 / / 기사승인 : 2009-11-12 16: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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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조 성동구청장 자서전 ‘꿈이 있어 아름답다’ 민선 4기를 지내며 서울 성동구를 이끌고 있는 이호조 구청장이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온 진솔한 삶의 모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꿈이 있어 아름답다’란 제목의 책자를 펴냈다. 벽촌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에서 부터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공무원까지 오른 흔치 않은 삶을 담은 그의 공직생활 45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에 10차례에 걸쳐 장별로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주)

3. 공직자로서의 브랜드를 만들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첫 발령지로 경북도청으로 가게 되었다. 고시 합격 동기생인 김광원(전 국회 농수산위원장), 조해영(전 대구시 민선 시장)과 함께 경북도청에 배치되었는데, 두 사람 모두 서울 법대 출신으로 나이도 나보다 2~4살이나 높은 연배인지라, 동기였지만 조금은 어려운 관계였다.

동기들은 내가 갖지 못한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바로 정규 대학 생활 경험과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였다. 여유롭게 대학 생활을 하고, 학창 시절 학생운동이나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얻은 원만한 인적 네트워크는 내겐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콤플렉스가 되었다.

여기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며 근무하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겨 내 능력을 펼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내무부 새마을 상황실 파견근무자 모집이 있어 지원했고 그곳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했다.

내무부 새마을 상황실 기구가 폐지되면서 서울시청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구자춘 서울시장님의 배려로 서울시 기획담당관실 심사분석 계장으로 가게 되었다. 마치 고시에 합격하고 첫 발령을 받고 출근하는 기분이 들었다.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렇게 서울시 공직자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1976년이었다.

서울시 사회과장으로 일하고 있던 1984년 여름, 서울은 엄청난 폭우로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해 많은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피해가 큰 만큼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 사회과장으로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특히 지역별 실정에 맞춰가면서도 형평성 있는 수재민 구호 작업을 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 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은 이 일로 국무총리실 전문위원이 나를 부른 적이 있다. 구호물자를 골고루 나누어 주지 못했다는 일부 지역의 불만이 담긴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전문위원은 그 신문을 들이 밀며 벌건 얼굴로 내게 불호령을 내렸다. “위원님! 불이 나는데 옆에 물이 있으면 우선 그 물로 가까이 있는 불부터 꺼야 되지 않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충분한 물을 확보하고 불을 끄려다가는 집과 재산이 다 불에 타버리지 않을까요? 이거야말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전문위원께 분명한 내 생각을 말씀드렸고, 잘못된 기사로 인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1986년 누구나 선망하는 기획담당관 자리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시청 조직에서 기획담당관은 행정관리국의 행정과장과 함께 승진 서열 1순위를 다투는 주요 요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간관계가 좋고 업무를 탁월하게 잘할 수 있다는 검증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어 서울시 공직자라면 누구나 욕심을 내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울시 사회과장으로 재직하면서 1984년에 있던 대규모 침수 피해를 잘 수습했던 이력과 IMF와 IBRD 총회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준비하면서 서울역 주변의 장애인 이주 대책을 무리 없이 추진했던 것이 당시 염보현 시장님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획담당관으로 일할 때는 서울시 전체의 계획들을 종합하여 서울시의 장단기 비전을 만들어 내고, 대외 홍보를 위한 기획 보도자료, 시장의 대내외 브리핑자료, 연말연초 신년사와 송년사 그리고 국회 국정감사에 대한 대책 자료 등을 만드는 일을 도맡아 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서울시장은 신년 업무 계획을 수립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다. 이 일은 시장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여부를 가름하는 핵심 요인이 되다 보니 서울시장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실무 담당인 기획담당관에게 이 업무의 중압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람이 큰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어려움도 겪게 되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다. 공직생활을 하다 보면 주어진 자리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 윗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읽느냐, 또 직원들과 얼마나 호흡을 같이 하며 일하느냐에 따라 자기 브랜드가 형성된다. 서울시 같은 커다란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서울시 기획담당관 2년 반 동안에 쌓은 브랜드 덕분에 좋은 보직으로 옮길 수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순간의 자기 브랜드 형성이 일생의 평판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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