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행정구역 성동구청 올 땐 시장된 것처럼 묵직한 책임감 느껴"

안은영 / / 기사승인 : 2009-11-12 16: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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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조 성동구청장 자서전 ‘꿈이 있어 아름답다’ 민선 4기를 지내며 서울 성동구를 이끌고 있는 이호조 구청장이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온 진솔한 삶의 모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꿈이 있어 아름답다’란 제목의 책자를 펴냈다. 벽촌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에서 부터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공무원까지 오른 흔치 않은 삶을 담은 그의 공직생활 45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에 10차례에 걸쳐 장별로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주)

4. 성동구와 첫 인연

1993년의 마지막 날 성동구청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부임 전날, 여당인 이세기 의원에게 인사차 방문을 갔다. 나를 처음보자 마자 이세기 의원은 “당신은 구청장이 아니라 성동의 시장이십니다.” 라며 날 치켜세워 주셨다.

그 당시 성동구는 인구가 78만으로 전국에서 제일 큰 행정구역이었다. 이세기 의원의 말을 들으니 왠지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정말로 시장이 된 것처럼 묵직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야당인 조세형 의원에게는 부임 당일 이른 아침에 인사를 갔었다. 임명직 구청장이 야당 의원 집에 신심 인사차 방문한 것에 적이 놀라는 표정이셨다. 조세형 의원 역시 새로운 구청장인 내게 큰 기대를 갖고 계시다며 함께 성동의 발전을 위해 잘해보자는 말씀을 하셨다. 관선 성동구청장으로 일한 1년 반 동안 국회의원들과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조그마한 배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하수관거 개량 공사에 대한 한 종교 단체의 반대를 설득하다

당시 성동구 관할이던 용마산 아랫마을은 용마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담아 내리는 노후된 하수관거 위로 무허가 건물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름 장마 때면 폭우로 침수 피해가 날까봐 염려가 되던 지역이었다.

서울시에서는 하수관거 개량을 위한 공사 예산을 수년째 세워두고 있었지만 매번 한 종교 단체의 반대로 공사를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우회하는 굴착공사를 해야 하는데 종교 단체 측에서 단체의 기를 꺾는다는 이유로 도로 굴착을 반대하고 있어 공사가 수년 동안 보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전해 듣고 나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행정을 집행하다 보면 공무원들이 외부 압력에 지레 겁을 먹고 정당한 법 집행을 못하곤 하는데, 이 일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 단체 측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안내하고 그것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게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지역의 동장을 불렀다. 그리고 종교단체 원장을 찾아가 나의 말을 전하라고 일렀다.

“금년 여름에 폭우가 쏟아져 하수관거가 파손된다면 그 주변은 전부 물바다가 되어 인명, 재산상 피해가 막대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면 구청장으로서 저는 78만 성동구민과 함께 그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행정기관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막는 종교집단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그 이튿날 그 지역 동장이 숨이 차게 구청장실로 뛰어왔다.

“그동안 오해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공사를 시작해도 좋습니다.”라는 종교단체 원장의 대답을 받아 온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쉽게 풀렸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시 하수국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년 동안 설득이 안 되던 일이 청장님께서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고맙습니다.”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전화였다.

-성동구를 분구하다

성동구의 인구가 78만 명이 넘어 전국 행정구 중 가장 큰 규모를 이루고 있었다. 인구 규모가 계속 커지다 보니 실제 분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서울시에서 성동구 분구를 최종 결정했다. 나는 이세기 의원과 협의해 동일로를 기준으로 구의 경계를 나누기로 정하고 본격적인 분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반듯한 구획이었지만 지금의 송정동은 동일로를 중심으로 반 토막이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해 지역구 위원장인 김학원 의원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성동구의 명칭을 서로 고수하려는 주장을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분구가 되면서 새로운 구의 명칭을 만드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분구 계획상 지역이 나누어지게 된 송정동 지역 주민들은 지금의 광진구 쪽에 송정동 전체가 포함될 수 있도록 동을 봉합해 달라며 매일 구청으로 찾아왔다. 주민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성동구에 속하게 되는 송정동에 많은 예산을 투자해 어린이집 신축을 비롯해 지역 개발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설득을 이어나갔다.

구 명칭에 대한 갈등은 현 성동구가 ‘성동’이란 이름을 갖고, 분구가 되는 지역은 ‘현 구청사’를 갖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이 경우도 여러 가지 장애물들이 많았지만 결국 구의원들을 설득해 전체 분위기를 마무리 지었다. 새로 분구되는 지역은 광나루의 한문 이름인 ‘광진’으로 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광진’이라 이름은 서울시지명위원회에서도 이름을 잘 지었다는 칭찬을 받았다.

새로운 청사 후보지 선정도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결국 내가 1순위로 예측했던 미군부대 창고 부지가 최종 부지로 결정되었는데, 후임 민선 구청장께서 통 크게 신청사를 잘 설계하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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