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무국장 때 인사문제 고민 많았지만 원칙대로하니 되레 직원신뢰 따라와"

안은영 / / 기사승인 : 2009-11-15 14: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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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조 성동구청장 자서전 ‘꿈이 있어 아름답다’ 민선 4기를 지내며 서울 성동구를 이끌고 있는 이호조 구청장이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온 진솔한 삶의 모습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꿈이 있어 아름답다’란 제목의 책자를 펴냈다. 벽촌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에서 부터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1급 공무원까지 오른 흔치 않은 삶을 담은 그의 공직생활 45년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에 10차례에 걸쳐 장별로 요약해 싣는다. (편집자주)

5. 일복(福) 많은 공직자

서울시 내무국장이 되다

민선자치 초기 서울시 내무국장으로 발탁되었다. 너무도 뜻밖의 보직을 받은 덕분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서울시 내무국장은 한때는 대한민국 이사관급의 5대 보직 중 하나일 만큼 무게감이 있는 자리였다. 특히, 서울시청의 인력 운영과 직원 인사를 비롯해 시정이 원활히 수행될 수 있도록 제반 지원을 담당하는 곳이다 보니 그 책임감도 막중했다.

내무국장으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우선 민선 초기 시장단의 인사취향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이 인가였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다행히도 기우로 끝이 났다. 오히려 고위직의 보직 인사 등 어려운 인사 문제를 더 쉽게 풀 수 있었다. 새로 취임한 조순 시장과 정무부시장은 일단 서울시의 공직자들을 잘 알지 못했다. 다른 분들은 혹여 오해를 받을까 봐 인사문제에 소극적이 되다 보니 국장의 의견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사 계획안을 만들어 책임 지위에 있는 분의 참여하에 검토회의를 거치는 것이 필수였다.

내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승진 인사는 분명한 원칙을 정해 승진 해당자는 결격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승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큰 잡음 없이 마쳤던 걸로 기억한다. 일을 겁내지 않고 스스로 욕심을 버리면 오히려 쉬운 일이 인사업무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모습들이 나중에 긍정적인 소문으로 번졌고 국장에 대한 시청 직원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종국에는 조직풍토 개선에도 기여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시장단의 개인 욕심 없는 의연한 인격에도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 싶다. 회고해 보건대 개인적이거나 정치적 청탁을 스스로 삼가셨고, 또 외부의 압력성 청탁에는 방파제가 되어주셨다.

1997년 난 서울시 교통관리실 실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교통관리실은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었다. 대중교통의 원조하고 할 수 있는 버스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합리적인 노선 조정이 필수였는데, 노선이 어디냐에 따라 버스 회사의 수입 차이가 크다 보니 여러모로 유혹과 압력이 많은 자리였다. 이렇다 보니 버스 노선에 대한 조정 업무는 누군가에게는 기피 업무가 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선호업무가 되어 부조리 유발로 인해 공직을 그만두는 곤혹스런 일도 있었다.

내가 교통관리실장으로 발령을 받을 때도 ‘폐점상태’와 마찬가지였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버스 노선 담당자의 부도덕한 일처리로 인해 담당자부터 전임 실장까지 구속되거나 도피한 상태였다. 우선 남아 있는 직원들을 안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였다. 점심, 저녁 시간을 활용해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눠가며 안심하고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추어 나갔다.

그리고 버스 회사들이 로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노하우와 공직자로서의 기본 마인드 교육도 다시 시작했다. 부조리를 우려하여 만남을 피하기보다는 만나서 대화를 하되 식사 자리는 설렁탕과 같은 부담이 가지 않는 메뉴를 고르도록 했고 반드시 더치페이를 하도록 했다.

혼잡 통행료 도입을 위해 남산 1,3호 터널의 시설까지 준공한 상태였지만 경찰 측과의 갈등으로 인해 시행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난감한 상황에서의 보직 발령이었다.

남산 1,3호 터널의 혼잡통행료 지연도 교통관리실의 묵은 과제였다. 시설까지 준공을 마친 상태에서 징수 업무가 지연되고 있었던 것은 경찰과의 갈등이 주요원인이었다. 교통관리실장으로 발령을 받자마자 그 이튿날 서울시경을 예방하기로 했다.

시경국장을 만나 혼잡 통행료 도입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부터 설명했다. 시설까지 이미 완공된 상태라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나의 완곡한 부탁에 시경국장은 결국 내 손을 들어주었다. 지루하게 미뤄지던 혼잡 통행료 징수를 결국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시장님도 이 소식을 들으시자마자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느냐며 반가움의 전화를 주셨다.

당산철교의 안전성 문제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성수대교 붕괴 사고로 혼쭐이 나있던 서울시는 당산철교를 철거하고 재시공하려는 입장이었고, 토목학회와 시의회에서는 보수만 하면 철거를 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 연일 시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당산철교는 결국 철거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교통 불편의 문제는 그 지점을 셔틀버스로 지하철과 연결하는 방법으로 해소하기로 해 지하철공사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버스 당 하루 평균 수입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버스 회사들과의 갈등을 해결하였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 버스준공영제를 추진한 시발이기도 했다.

한편 조순 시장님께서 대통령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을 그만두실 때 시장 업무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 방문지를 마지막으로 방문하신 적이 있는데 그곳이 남산 1,3호 터널과 당산철교 철거 현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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