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냐 굴종이냐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1-17 14: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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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주먹구구식 행정이 인명을 앗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또 일어났다.

일본인 관광객을 포함한 10여명이 화재로 유명을 달리하게 만든 사건이 터진 것이다.

처음 일이 아니다.

잊혀질만 하면 발생하는 안전불감형 사고가 이번에는 부산의 한 실내사격장을 겨냥했다.

법과 원칙의 외면으로 인해 발생한 후진국형 사고라는 꼬리표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해당 사격장이 불과 열흘 전 소방당국의 안전점검을 받았으나 별 다른 지적을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에 조금만 더 관심만 가졌더라도 막을 수 있었을거라는 아쉬움이 부끄러움과 뒤섞여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같다.

이전에도 인재로 무고한 인명을 잃었던 경험들이 부지기수다.

23명의 어린 유치원생을 화마에 빼앗겼던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화재사건도 기억에 생생하고 40여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냉동창고 참사도 들끓는 여론에 시달릴 만큼 어이없는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었던 인재였다.

끔찍한 것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응하는 말과 행동들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당국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는 여론은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당국은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온몸으로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는 절차가 그것이다.

그럴 때마다 뭔가 해법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기만 넘기고 나면 여전히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순환고리라도 되는 양 재현됐다.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처럼 비슷한 멘트와 행동 방식이 반복되는 가운데 사건만 수습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구태가 펼쳐졌다.

10여명의 인명이 유명을 달리한 그 날, 부산의 실내 사격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명확한 사건 진상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조급증과 안전 불감증이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번 사고의 주된 요인이라는 정황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다.

부산을 찾는 일본 관광객이 35만 정도라니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렇게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빠른 시간에 회전시키는 일이 영업전략의 화두가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결국은 무리한 관광스케줄 진행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려다 보니 기본적인 안전수칙 따위는 외면하게 된다는 업계간 소문도 떠도는 걸 보면 내 추측이 마냥 허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다한 관광 일정으로 득을 보려고 한 불성실한 가이더의 무리한 욕심이 결국 이번 참사를 야기한 원인으로 지목될 만하다는 결론이다.

이번 사건은 소탐대실의 단견이 불러온 참화였다.

철저한 대비 없는 조급증이 시행착오를 초래했고 인재로 이어지는 불운이 됐다.

1억 인구의 일본이 어차피 지리적으로 가깝고 보다 저렴한 여행경비의 호조건을 가진 대한민국을 최상의 여행지로 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가 일본관광객을 상대로 단기간에 무리하게 돈을 벌려고 하기보다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확실한 관광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명을 재천이라거나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화를 운명이라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인명과 안전을 방치하는 경우가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치명적 독성과 심각한 반사회적 인자를 부지불식간에 용납하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선진국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건지 어이없다.

복잡해진 세상에 놓여진 우리의 생명은 생각보다 훨씬 불완전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화 된 검토와 점검을 통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미처 예측할 수 없는 위험까지도 대비해야 한다.

이번 사고로 7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유명을 달리했다. 내국인의 희생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대통령과 장관이 나서서 사과하거나 사죄 성명을 내고 총리가 무릎을 꿇고 (일본인)피해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초유의 모습을 뉴스를 통해 봤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고인들과 그 유족에 조의를 표하는 마음은 누구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에 대처하는 정부 당국의 움직임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특히 정운찬 총리의 경우, 국민정서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는지 궁금하다.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는데 굳이 정총리가 나섰어야 했을까?

한일관계나 부산지역 관광객 감소에 대한 우려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총리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차라리 부산 상가연합회 회장이나 부산지역 경찰총수, 또는 부산 시장이 나서 최선을 다해 유족을 위로하고 장례, 보상, 시신 수습 등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일이 정운찬 총리의 개인적 행보였다면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난번 청문회 석상에서 보여준 ‘마루타’나 ‘731 부대’ 답변 등에 비춰볼 때 어쩌면 정치적 액션을 쓸 줄 모르는 정총리의 성품이 그대로 반영된 결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얼핏 들긴 했다.

그러나 일국의 총리로서의 그의 처신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그가 대한민국의 총리인 자신의 직위에 대해 좀 더 숙고했다면 다른 대안이 있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정총리를 향해 쏟아지는 국민 지탄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민 여론을 단순한 감정적 대응이라고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국민의 분노는 일본에 대한 오래 묵은 감정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릎 꿇은 정총리의 모습이 위로인지 굴종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대통령께서 강조하신 국격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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