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이 ‘4대강 사업’을 본다면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1-23 14: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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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나는 로널드 레이건이 없었더라면 ‘보수주의’라는 정치 철학이 과연 명맥을 이어 가고 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경제정책 실패로 고배를 들자 미국 공화당원들은 조지 W. 부시가 레이건의 교훈과 원칙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서 그렇게 됐다고 뒤늦게 한탄했다.

그 만큼 레이건이야말로 모든 면에서 보수의 전범(典範)이라고 할 만하다.

레이건이 1970년대 미국에 팽배한 환경운동과 과도한 환경법규를 좋아하지 않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레이건은 정부가 들어 보지도 못한 야생동식물을 멸종위기 종자로 지정하고, 환경단체가 그런 종(種)의 생존이 위협받는다면서 공사가 많이 진척된 댐을 저지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특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1977년 7월 6일자 방송 칼럼 ‘멸종위기 종자’)

그렇다고 해서 레이건이 막무가내식(式) 개발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레이건은 정부와 민간이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를 하면 환경문제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다.(1977년 4월 13일자 방송 칼럼 ‘환경’)

영원한 낙관론자였던 레이건은 미국인들이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윤택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외치는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을 의심의 눈으로 보았다.

영화배우로선 성공하지 못한 레이건은 방송 프로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53년 1월부터 1962년 5월까지 레이건은 제네널 일렉트릭(GE)의 후원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주말 방송을 진행해서 인기를 얻었다.

방송진행을 위해 레이건은 책을 많이 읽어야 했고,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

GE가 후원한 방송 프로는 1962년 5월에 중단되었는데, 그것은 레이건이 ‘방송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방송 중에 레이건은 뉴딜 정책의 유산(遺産)인 TVA(테네시 계곡 공사)가 ‘큰 정부(Big Government)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TVA가 방송 프로의 전주(錢主)인 GE에 항의를 했던 것이다.

TVA가 건설하는 댐과 화력발전소에 터빈을 공급하던 GE는 TVA의 눈치를 보느냐고 아예 그 프로를 중단하고 말았다.

레이건은 졸지에 직장을 잃어버렸지만,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레이건은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1964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려던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운동을 했다.

대통령 선거 도중 레이건은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유명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이건은 비대한 연방정부와 방만한 정부 지출을 TVA를 들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TVA 사업을 추진하는 연방정부는 500년에 한번 있을 홍수에 대비한다고 했지만 500년에 한번 있을 홍수로 잠길 수 있는 면적보다 훨씬 큰 면적을 영원토록 물에 잠겨 버리게 했습니다. TVA가 지고 있는 부채에 대해 지불하는 이자는 댐 건설로 예방했다는 홍수 피해의 다섯 배는 됩니다. TVA가 댐으로 발전을 한다고 하지만 TVA의 발전량 중 댐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밖에 안 됩니다. 연방정부는 화물운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테네시 강 지류를 운하로 연결했는데, 그 운하에 다니는 바지는 TVA의 화력 발전소에서 태워버릴 석탄을 싣고 다닐 뿐입니다. 그런데 이 운하를 유지 관리하는 비용으로 석탄을 화물열차에 실어 나르면, 열차 요금을 다 내고도 돈이 남습니다.”

레이건은 1966년 선거에서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어 1975년 초까지 재임했다.

197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애석하게 패배한 그는 1980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가 되어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 지미 카터에 압승했다.

재임 중 레이건은 국민세금을 들이마시는 공기업인 TVA와 암트랙 철도회사를 민영화해 보려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TVA를 비판한 레이건의 연설은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MB 정권에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운하를 파서 배를 산으로 들어 올리겠다는 발상은 누가 보아도 우스운 것이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용도가 불분명한 댐을 열 몇 개씩이나 4대강 본류에 주렁주렁 건설하겠다는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운하를 먼저 건설하고, 그 다음에 운하를 다닐 수 있는 배를 고안해서 발주하고, 그 다음에 그런 배에 실을 화물을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경인운하 사업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레이건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한국이란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운하를 파고 4대강 사업을 하자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을 레이건이 본다면 그는 “‘보수’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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