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해결의 조짐은커녕 팽팽한 기싸움으로 이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정부의 강경 대응 모드 역시 녹록치 않는 분위기다.
전국철도노조 사무실 등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전격 단행되고 정부 각료들이 줄지어 철도노조의 불법성을 규탄(?)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는가 하면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법과 원칙으로의 대응을 천명하는 등 노사간 갈등이 갈수록 강팍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사측 역시 노조가 공기업 선진화 저지, 단협 개선 및 합리적 임금체계 반대, 해고자 복직 등을 염두에 두고 불법파업을 획책하고 있다고 연일 목소리를 돋우고 있는 형국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목적, 수단, 절차면에서 법률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단체파업이라며 이번 파업의 원인을 사측 탓으로 돌리고 있다.
허준영 사장 체제 들어 일방적으로 개정한 단체협약 100여개 조항을 노조측에서 수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해지를 통보하는 등 대화를 외면하고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공기업 선진화 저지는 교섭항목에 들어있지도 않고 다만 임단협 개악 중단과 해고자 복직 등의 합의 이행이 노조 요구의 전부라는 항변으로 사측 주장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은 것 같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의 하소연이 맞는다더니 딱 그 양상이다.
뭐라고 딱 잘라 시시비비를 가려낼 수 없는 딱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측의 잘못을 질타하기도, 노조측이 지나치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참 애매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와중에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출근길 발이 묶인 시민들이라는 사실이고 이 싸움통에 한국경제가 멍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사 양측 어디에도 시민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 없다.
시민들 입장으로 보면 그저 자신들을 위한 싸움질에 몰입해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기만 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철도 파행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양측 모두 '직무유기'에 있어 '유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미국경찰과 한국경찰의 차이점을 발견할 기회가 있었다.
일테면 미국 경찰은 교통법규를 어기기 전에 경찰의 존재를 알림으로 해서 시민들의 준법정신을 일깨우고 예방에 중점을 두는 반면 한국 경찰은 길목에 숨어 있다가 불법 현장을 적발하는 식으로 단속과 처벌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요즘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이번 노조 파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의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건 소통을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소통부재에 있다고 본다.
단속과 처벌 위주의 해법보다는 예방지도로 소통에 방점을 둔 노사갈등 해결책이 제시됐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철조노조의 파업 방향을 정부가 어느 정도 예측하고 이를 예방하는 쪽으로 대응의 가닥을 잡았더라면 훨씬 수월한 마무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노조의 요구에 미리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합리적 조정에 나섰다면 파국으로 치닫는 일만큼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툭하면 국가의 백년지계니 역사적 소명이니 하는 말들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정부다.
아무래도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노조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는 힘있는 정부의 만용이 파국을 자초한다는 미필적 고의의 혐의를 씌워도 억울할 게 없어 보인다.
연일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부에게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하고 있는 모습은 구설을 자초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노사분규를 조장하는 듯한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한다.
불법=해임의 칼자루를 쥔 강자의 횡포가 노조의 작은 힘들을 모으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문득 드는 이유다.
그렇다고 노조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태여 따진다면 노조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워지는 경제 때문에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바이 몰락 이후 세계 경제를 진단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역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노조가 파업으로 국가경제를 흔들어도 될 만큼 한가하거나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때다.
이런 식의 파업이 계속된다면 결국 왕따 신세가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노조의 요구가 아무리 생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역풍에 휘말렸던 과거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삼성이 세계적 기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런저런 이유가 많겠지만 무노조 경영의 힘이 지대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바다.
반면에 세계 4강의 반열로 꼽히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도요타 자동차보다 지엠이나 클라이슬러의 운명에 비교되는 것은 현대자동차 노조가 지엠이나 클라이슬러의 전철을 밟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된 탓이다.
파업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는 건 노조원 가족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업현장을 걱정스럽고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떤 식의 결말로 이어질지 그 추이를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시간조차 모호할 뿐이다.
더 큰 어려움 없이 극적 타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박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파업현장의 전운은 가실 기미도 없다.
직장이 없는 젊은이, 회사 도산으로 실직한 가장들, 저임금을 찾아 외국으로 이사 간 회사 때문에 하루아침에 구심점을 잃어버린 수많은 근로자들의 서글픈 절규를 생각해보자.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돼 있다는 단테의 말을 깊이깊이 아주 깊이 되새김질 해보는 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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