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더 아름다운 건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2-16 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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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개성있는 자기관리로 인생의 제2막을 흥미롭게 열어 보이는 노익장의 열정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자부심 넘치는 노년의 당당한 삶은 여러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오래 시간을 거쳐 숙성된 삶의 완숙미가 주는 안정감은 물론이고 경지에 오른 삶을 통해 모범답안 같은 지표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자칫 패착이 되기 쉬운 은퇴 이후의 삶을 공고한 자기철학을 바탕으로 개성있게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나이 든다는 게 두려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색과 달관에 단련된 안정감은 젊은 날 방랑기를 부축이던 가슴 속 불덩이를 잠재울 뿐 아니라 그 온화한 기운은 인생의 절정기를 다시 불러오는 회춘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역사의 자취에서도 황혼의 아름다운 흔적이 많다.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었고 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대중적인 작품으로 사랑받고 있는 주세페 베르디는 당시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80세가 되어서도 오페라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70대에도 새로운 형식의 유파를 개척했고 90세가 넘어 죽음에 이르도록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인상주의 이후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나 20세기 최고의 연주자로 호평받았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95세 때도 연습을 통해 조금씩 나아진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임종 당일까지도 새롭게 연주할 곡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가로 89세의 천수를 누린 미켈란젤로의 노익장 역시 완벽한 자신의 예술 세계를 위해 투자됐다는 점에서 다른 거장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완벽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년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완벽한 작품을 향한 도전 정신으로 적극적인 노년을 보낸 그들에게 깊은 여운이 남는 건 단순한 생계나 권력, 명예를 목표로 한 속물적인 열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잊고 일과 사랑과 삶에 충실했던,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장수를 누린 거장들의 이야기는 멋진 노년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사표가 되고도 남는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당당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노년의 삶을 꾸려 가시는 어른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나 역시 그런 행운을 누리는 사람 중 하나다.

YS 정권 당시 정무수석을 지냈고 농어촌개발 사장, 재선 국회의원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라 폰떼’의 조홍래 사장님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인생의 황혼기를 아름답게 보낼 수 있는 지 깨닫고 있다.

라 폰떼는 의정부 장암동에 있는 경양식집이다.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돈이 잘 된 분위기가 편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오는 분들이 찾기 쉬운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가끔씩 이용하는 곳이다.

특히 나로 하여금 이곳을 자주 찾게 하는 이유는 순전히 조홍래 사장님의 인품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는 화려한 과거는 아랑곳없이 소박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탄복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라 폰떼 자리는 지금은 번화한 큰 길가가 됐지만 오래 전 국회의원에 낙선한 그가 돼지와 닭을 키우며 정착할 때만 해도 의정부의 오지였다.

그러다 (당신 표현에 의하면)갑자기 큰 길가가 되는 바람에 얼결에 차린 음식점이 바로 ‘라 폰떼’인 것이다.

갈 때마다 나를 반겨주는 그의 온화한 미소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관심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위로할 수 있는 노년의 여유로움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가끔씩 당신의 집에 초대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느낀 바를 코멘트 해주시기도 하는데 경륜으로 익혀진 생각을 듣다보면 더 없이 귀한 시간이 되곤 한다.

빗자루가 손에서 놓일 날이 없는 조사장님을 보면서 안분지족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바람직하게 나이 들어가는 어른의 모습을 본다.

고려대 총장을 지내신 홍일식 세계孝문화본부 총재님도 현역 못지않게 충실한 노년을 보내고 계시는 분이시다.

평생을 통해 축적된 경륜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방향을 짚어주시는 ‘나침반’ 역할로 노년의 존재감을 보여주시는 홍총재님의 에너지는 정말로 놀랍다. 홍씨 종친회 고문을 맡고 계셔서 개인적인 인연도 적지 않은데 후학을 위해 학자적 열정을 다하시는 노익장은 지켜보는 이들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하다.

며칠 전 경민대학 강단에서 ‘21세기의 효’를 설파하시는 그분의 강연을 도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꼿꼿한 학자의 카랑카랑한 서슬로 어지간한 현역은 비교도 안될 만큼 자신에 찬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자기 신념에 충실한 어른의 건재함이 주는 든든함이라고나 할까, 결정적인 순간, 마냥 기대어도 걱정 없을 울타리 같은 느낌을 주시는 분이시다.

의정부 교육장을 지내시고 지역의 교육계 원로이신 김윤식 장로님을 통해서도 바람직한 노년의 길을 배우고 있다.

김 장로님은 은퇴이후 장로합창단, 기도회 모임, 교육자 전도 등을 주도하시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 분이다.

신앙을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현역시절 보다 더 자유롭고 왕성한 활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다는 면에서 취미와 재능을 통해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노년의 역할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되신다. 닮고 싶은 노년의 삶이다.

정해진 과정을 향해 가는 인생이지만 저마다의 삶의 지평이 다르다는 관점에서 끝없는 노력은 아무리 더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노년기의 열정이야말로 삶의 충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인인 것 같다.

2009년이 저물어 가고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이 순간, 자신의 삶을 모범적으로 운용하는 분들의 삶을 이정표 삼아 복된 노년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신년 계획으로 세워볼까 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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