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성은 아마도 인의 장막이 아닐까 싶다.
인의 장막은 최고 권력자의 총기와 혜안을 뺏는데 직방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 그것이 역사일지 모른다. 둘러보면 그렇게 나락에 떨어져 사라져간 권력의 실체가 이미 부지기수다.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현대사를 통해 익히 경험해서 알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권력의 정점에서 비판을 수용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가 보다.
거스르는 목소리보다 취향을 맞추는 아부의 달콤함에 더 끌리게 되는 것 같다.
교언영색에 젖은 눈과 귀로 세상을 보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평가한다고 착각하기 일쑤다.
사실은 사욕에 혈안이 된 아첨꾼의 조종을 받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뜻있는 사람들은 점점 침묵을 택하게 되고 세상은 혼탁해지는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수많은 공과가 있지만 그에게는 ‘6.25 당시 서울을 사수할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도망간 비겁한 대통령’ 이라는 치욕스런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당사자로선 약간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 당시 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당사자의 선택이라기보다 측근의 전권으로 결정된 정황이 뒤늦게 밝혀졌다.
실제로 6.25 발발 직후 북한군이 의정부 가까이 진격해 왔는데도 측근과 군 장성들은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전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희망적이라고 하면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국군이 유리한 상황이니 안심하고 피난가지 말라’는 내용의 대통령 육성 방송으로 동요하는 서울 시민들의 피난길을 막고 정작 대통령은 피난길로 이끌었다.
대통령 자신은 피난 가는 상황조차 인식 못하고 측근에 의해 이리 저리 끌려 다녔을 뿐인데 주홍글씨가 가슴에 새겨진 것이다.
측근의 그릇된 충성심이 그를 정치적 무능력자로 몰고 간 사례는 많다. 한때 최고의 자질을 갖춘 국부로 존경 받던 그를 망친 주범은 다름 아닌 인의 장막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말년의 그로 하여금 추방당해 통한의 눈물을 뿌리며 나라 밖을 떠돌게 했고 먼 이국땅에서 숨을 거두게 만든 비운의 단초가 바로 ‘측근’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의 진실이다.
인의 장막 폐단은 서양이라고 예외는 아닌 듯싶다.
미국의 부시 정권 당시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가 쫓겨나다시피 사임한 폴 오닐은 부시 행정부의 ‘웨스트 윙’ 참모진들을 ‘부시를 인의 장막 안에 가두는 ‘충성부대’라며 맹비난했다.
‘충성의 대가’라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쏟아낸 부시에 대한 오닐의 비난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부시가 미국민 행복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는 분명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부시의 대통령 재임기를 어두운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이 우리사회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거쳐 ‘방기곡경'(旁岐曲逕)’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세종시 수정, 4대강 사업추진, 미디어 법 처리 등 굵직한 정책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정국 현상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정부 독단에 대한 문제점이나 물질적 이익을 취하려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실기했다는 여타 교수들의 지적도 눈길을 끈다.
자칫 이런 문제제기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나 근로 분위기를 깬다는 식의, 국가의 백년지계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집단의 배부른 방탕으로 몰리게 될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걸 빌미로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와 탄식이 매몰될까 싶어서다.
다수의 국민여론과 교감하고 있는 이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누군가 잘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도 고개를 든다.
옳은 것보다 강한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불끈 고개를 쳐든다.
보수정권을 학수고대했던 사람으로서 대립과 반목을 치유하고 국민 마음을 얻는 성공한 정권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같은 기대감이 솔직히 약간은 탈색된 듯한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보수정권이 향후 10년 이상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불투명진 것 같아 걱정이다.
정권을 잡기까지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기왕에 주어진 5년 동안 국론 분열을 막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포용의 정치를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국정운영이 전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굵직한 몇 가지 사업에 대해 국가적 이익이 많다는 (정부 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은 고개를 젓고 있는 형국이어서 큰 걱정이다.
많은 사람이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는 만큼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 받는 일을 급선무로 생각하는 전향적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무엇으로 정권을 창출했느냐 보다 이긴 후 어떤 식으로 통치했느냐가 정권의 승패를 결정짓는 주요소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총리나 우리의 박정희 대통령 등이 성공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건 그들이 정권을 잡고 일인자로 등극하는데 보다 재임기 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떤 업적을 남겼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바야흐로 2009년이 거의 다 끝나가는 시점이다.
새롭게 열리게 될 2010년을 맞으며 지금이라도 민심과 함께 호흡하고 인심을 얻을 수 있는 정부의 변모를 기대한다.
철저한 자기성찰만이 국민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호질기의(護疾忌醫 과실이 있으면서도 남에게 충고받기를 싫어함을 비유)나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도덕불감증 세태를 풍자) 등 부정적인 의미보다 公明正大나 日新又日新 등의 사자성어로 희망섞인 기대감을 부축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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