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싸움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1-07 15: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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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눈싸움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 기억 중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다.

수업시간에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그 다음은 우리들 세상이었다.

선생님을 졸라 운동장에 나가서 눈싸움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청백으로 팀을 나눠 상대를 향해 정신없이 눈덩이를 던지다 보면 온 몸이 축축해 질 정도로 땀이 났다.

조금 더 규모가 커지면 반 대항 눈싸움 시합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무엇이 그리 즐거웠는지 운동장이 우리들 웃음소리로 넘치곤 했다.

간혹 옆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을 벌일 때도 있었는데 이내 기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살벌한 전쟁 분위기가 되는 바람에 눈덩이의 질부터 달라졌다.

넘치는 승부욕이 눈을 뭉칠 때 연탄재나 심지어 돌멩이를 넣게 만들었던 것이다.

격렬한 눈싸움 끝에 우리 편이 다치기라도 하면 불타는 복수심(?)에 응징을 맹세하던 기억이 아스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는 그랬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만으로도 마냥 행복할 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요즘의 눈온 뒤 풍경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보다 드잡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제는 눈이 내리면 아이들 눈싸움 대신 어른들이 싸우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모처럼의 폭설이 거리를 점령한 요 며칠 동안만 해도 눈 치우는 문제 때문에 이웃끼리 마찰을 빚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집 앞에 쌓인 눈을 서로 미루다 일어난 다툼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실제로 뉴스를 보니 한 다세대 주택에서 집 앞의 눈을 치우니 마느니 서로 싸우다가 급기야 주먹다짐으로 이어져 경찰에 상해혐의로 불구속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명동에서도 상가 주인과 건물 경비원이 제설작업 도중 시비가 붙어 폭행사건으로 확산된 사건이 있었다.

또 남의 가게 앞에 눈을 쌓다가 10여년 넘게 이웃해 가며 정을 나누던 사이가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도 있었다.

우리 수준의 현주소를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민망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줄을 잘 서는 미국인들 모습이 인상 깊었다. 새치기 등으로 남의 차례를 방해하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어 신기했다.

어디서든 줄을 서서 자기차례를 기다리는 질서가 몸에 밴 그들의 세련된 문화의식이 부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위대한(?) 미국인의 선진의식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당시 노조파업 때문이었는지 고장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5분, 10분 간격으로 오던 버스가 4,50분 지나 도착하는 일이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가 도착하는 그 자리에, 질서 있던 평상시 모습은 간데없고 대오를 흐트러뜨리며 언성을 높이던 미국민의 ‘본성’만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국인들이 질서의식은 개인적인 피해가 없을 때의 얘기지 자신의 권익이 침해될 경우엔 미국인도 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미국의 대도시는 세계 인종의 전시장이어서 진정한 미국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제대로 된 영어조차 신기할 정도라는 반응이었다)

근래 들어 부쩍 國格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다.

국격을 올리는 방법엔 여러 길이 있겠지만 간단한 줄서기나 집 앞의 눈에 대한 국민의 작은 의식 하나가 한 나라의 품격을 재는 중요한 바로미터가 된다고 생각한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환경보다 불편하고 비정상인 국면에서 보여지는 품격이 진정한 국격으로 평가될 수 있다.

내가 목격했던 미국인들의 이중적 모습이 미국의 국격을 올리는 데 별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오래 전 얘기니 지금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핑크빛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야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이 그다지 녹록치 않다.

희망근로프로젝트 사업을 비롯한 공공 일자리가 지난해보다 대폭 줄면서 실업대란의 장벽이 코앞에 도사리고 있고, 노동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예상되는 노동대란의 파장도 결코 만만치 않은 걱정거리다.

그리고 지방선거로 인한 정치대란 등 걱정이 될 만한 지표들이 산적해 있는 실정만으로도 그렇다.

똑같은 어려움을 앞에 두고도 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니 더 어렵다.

월남의 패망은 부패한 관료와 안하무인으로 국격을 교란했던 지배계층의 몰상식함에서 기인한 점이 많다.

승승장구하던 장제석의 국민당이 패배했던 요인도 부패와 애민사상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뜨와네뜨의 불행한 종말도 국민의 외침을 외면했던 데서 비롯됐다.

도덕성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던 토인비의 말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국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국민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정유재란 등 수많은 외침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낸 주역은 임금이 아니었다.

애국심 똘똘 뭉쳐 저력을 발휘했던 민초들의 의지였다.

위대한 나라의 조건은 좋은 지도자와 위대한 국민이다.

그러나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국민은 필수 사항이고 좋은 지도자는 선택 조건이라는 사실을 준다.

국민이 위대하면 나쁜 지도자가 설 자리가 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하게 집 앞의 눈 따위로 목청을 높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모든 문제는 국민의 의식이 올바로 깨어 있을 때 해결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되찾아야 할 때다.

국가의 존폐흥망이 저마다의 손에 달려있는 현실을 알도록 하자.

그렇게 여러 가지로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는 대한민국을 구해내자. 우리가.

이왕이면 격조 있게 국격을 높이는 일등국민으로 말이다.

기상청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눈으로 시작된 생각이 지나치게 비약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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