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능시험인 SAT 부정행위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참으로 민망한 형국이 됐다.
강남 일대의 학원 강사와 학부모 등이 주축이 되어 韓美간 시차 때문에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 먼저 시험을 치르게 되는 점을 악용, 면도칼로 오려 내거나 공학용 계산기에 문제를 저장하는 식으로 SAT 시험문제를 유출시키다 들통이 난 것이다.
이번 부정행위는 그 신출기몰 한 기법으로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불과 얼마 전 대입수능평가를 건드려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더니 이번에는 외국 시험평가에까지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부정행위의 ‘지존’으로 등극할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시험지를 유출시킨 해당 학원 강사가 구속되고 그가 재직했던 학원에 휴원 조치가 내려졌다지만 사건의 시작은 지금부터가 될 것 같다.
SAT시험 주관처인 미국교육평가원(ETS)에서 보안담당자 2명이 급파되고 강남 일대의 학원가를 중심으로 경찰의 수사망이 확대되는 중이어서 그 끝이 어디가 될지 예측하기 힘든 상태다.
기막힌 일은 교사와 학부형, 그리고 거대자본의 잘못된 동업의식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도대체가 무엇이 잘못됐고 왜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조차 없다.
필요하다면 부정한 거래도 무방하다는 인식이 교사나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 사이에 만연돼 있는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 부끄러운 병리 현상이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은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강남의 SAT 학원가에서는 기출문제 확보를 위한 문제지 유출 공작은 ‘공개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심지어 잘나가는 스타강사가 되려면 ‘기출문제 확보력’을 기본 컨셉으로 갖춰야 할 정도다.
일부 SAT 학원 강사의 경우 문제지 유출 실력을 과시하면서 스스로의 ‘몸값’을 올리고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미국 유학을 위해 SAT를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원 설명회에서 스타강사로 알려진 모강사가 ‘차이나타운에서 흑인과의 암투 끝에 시험지를 손에 넣은’ 무용담을 자랑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심지어 이번에 문제지 유출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K강사의 경우, 입시설명회장에서 ‘태국에서 따끈따끈한 문제를 가져왔다’고 밝혀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하니 도덕적 해이의 실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의 실질적인 문제점은 시험점수 하나에 올인 하는 입시풍토에 있다고 본다.
이 사회의 모든 가치를 모두 시험성적만으로 재단하는 편협 된 기준을 들이밀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 크다.
개인의 인격이나 인성의 됨됨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 그 가치가 평가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득점을 쟁취해야 한다는 이 사회의 압력에서 기인하는 문제점이 크다.
불법행위가 학부모의 과중한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현실적으로 고등학생이 3년 동안 외국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이 무려 1억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금액은 말하자면 입학 사정시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나 자기소개서 대필 해결이나 고득점을 보장해주는 문제지 유출 비용, 그리고 봉사점수 조작 등에 이르기까지 (이번처럼 형사 입건될 소지를 안고 있는)부정거래의 ‘위험부담’까지 포함된 일종의 ‘범죄비용’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국내에서 대학 다닐 때 컨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던 적이 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후 10년간의 미국 유학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컨닝하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단연코 없다.
돌아보면 페어플레이 정신이 철저한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컨닝하겠다는 욕구 자체가 가동되지 않게끔 내 의식을 지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의 시험제도는 다양한 방식이 동원되긴 하지만 교실에서 시험지로 평가하거나 open book test가 됐건 take home test건 부정행위 가능성을 배제한 시험관리가 보편화 돼 있다.
대부분 부정행위 없이 시험을 치르는데 이는 부정행위를 수치심을 자극하는 치명적인 범죄행위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지탱해 온 청교도 정신이나 유럽의 기독교 정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한 국가의 문화가 찬란하게 만개하는 전성기는 인간의 도덕성과 자존의식이 가장 크게 확장되었을 때의 시너지 효과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제 아무리 중국이 세계 패권국 야망을 불태운다 해도 정신혁명 없는 경제발전만으로는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또한 북한의 붕괴가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취약한 경제구조 때문이 아니라 북한 사회에 만연돼 있는 도덕성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실종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원인을 찾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우리사회는 부정직, 부도덕 그리고 위선이 여전히 우리사회 구석구석을 넓고 깊게 휘감고 있다.
그 많은 교회와 사찰 그리고 교계지도자들의 거취가 무색할 지경이다.
페어플레이가 당연시 되고 존중되는 사회로 성숙해지지 못한다면 우리의 선진사회 진입에 대한 바람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제도적인 보완장치 보다는 우리의 젊은이와 아이들에게 본을 보이고 엄하게 양육할 기성세대의 각성이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효율성을 중시하거나 경제성장에만 집착하지 않는 평형감각이 필요한 이 때다.
개인적인 안일과 이익에 천착하는 천박한 욕구 보다는 사회적 불의 앞에서 공분할 줄 알고 사회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더 큰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바란다.
사익보다는 공익의 가치를 더 높은 가치로 인식할 수 있는 민도를 바란다.
21세기 우리의 나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조금씩 조금씩 더딘 발걸음으로나마 우리사회의 진정한 초석이 되겠다는 각오로 개안하자.
생각해 보라.
인생 전부를 걸만큼 SAT 시험이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인가를.
전체 인생을 놓고 볼 때 미미한 수치에 불과한 미국대학 입학에 인생의 전부를 거는 미몽으로부터 깨어나도록 하자.
그렇게 건강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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