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주식회사 덤인 대표 정경자 편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9-05 11: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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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면 되게 하는 여자!"

오래 전, 매일 밤 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군인 신분이라서. 그리고 두번째는 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딱히 종교적 이유를 들며 총을 거부하거나 성적인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난 총도 잘 쐈고 잘 달렸다. 

 

때때로 예쁜 여자들이 면회를 오면 술도 잘 마시는, 그저 보통의 군인일 뿐이었다.


헌데도, 참 많이 맞았다. '관물정리'라는 참으로 낯선 과업(?)이 매질의 가장 큰 이유였는데, 당시 난 그것때문에 시달리다 못해 탈영을 해버릴까 생각 했었다.

정말 지금도 알 수 없는 건 지급 받은 전투복, 팬티, 런닝, 내복들을 칼각에 맞춰서 접어 개키고,(그렇게 하려면 px에 가서 과자박스 등을 주워서 옷 속에 넣고 그 틀에 맞춰 접어야 한다.)

 

그걸 또 매일 저녁 점검하면서 "각이 살았네! 죽었네!" 하며 닥달하는 이유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의 전투력과는 하등 상관 없는 그 짓을 거부하다가 매도 맞고, 그 부당함을 따지다가 더 많이 맞았다. 그리고 요즘 말로 "관심 사병"으로 분류되었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은 옛날 일이다.


그런데 2021년 오늘, 그 놈의 정리, 수납을 열심히 해서 억수로 돈을 번다는 주식회사 '덤인'의 정경자 대표를 만났다. 섬찟하다.

첫마디, "정말 그 일로 돈을 벌어요?" 참 터무니 없는 무례한 질문에도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답한다.


"네, 돈 많이 벌고 있지요. 중요한 건 11만 8800여명이 같이 돈을 벌고 있다는 겁니다."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물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집안을 정리하고 수납하는 걸로 돈을 벌고 있다고요?"


"네, 믿어지지 않지요? 우리 사이트에 들어 오시면, 언제 어디서 누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다 볼 수 있어요. 11만8800여명이라는 숫자도 오늘. 지금 이 순간에 돈을 벌고 있는 숫자고요. 매일매일 늘고 있지요."

물론, 아무나 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실무교육도 받아야 하고, 이수에 따른 자격 심사를 거친 뒤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리하는 것이야 집에서 회사에서 우리가 늘 해왔던 일이 아닌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야 하다니...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노트북을 연다.

거기엔 세상에 없던 메뉴얼들이 쫘악! 펼쳐진다. 그런데 집안에서 늘 보던 일은 맞는데, 그걸 사뭇 진지하게 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참 평범하고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그 일들을, 마치 중요한 의식이라도 거행하듯 찬찬히 진행하는 모습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담겨있었다.


심지어 더 생경한 모습은 그 행위들을 마치 태권도장에서 품세를 가르치는 사범처럼 근엄한 표정과 진중한 동작으로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주식회사 '덤인'의  정경자 대표는 말했다.


"20대 때 정말 죽도록 일을 해 봤거든요. 그 때 어머니가 '너 일하다가 죽을래?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다.'라고 하시며 제가 싸가지고 온 일들을 밤새 대신 해치우셨어요. 그 때 엄마가 안 계셨으면 정말 내가 죽었을 지도 몰라요."

"천성적인 일 욕심에 완벽주의자였던 제 집착적 업무 태도를 보고, 엄마는 '마치 형벌을 받는 것  같다'고 비유하셨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부터인가 밤에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태가 잦아졌지요. 해외의 파트너들과 교감하며 해야하는 일 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요. '완벽주의자의 비애'라고나 할까요?"

독백처럼 말하는 그녀의 과거 지사는 듣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그러나 성경에 쓰여있다. "다 지나간다!"고. 그리고 성경의 계시대로 그녀가 업무 지옥에서 해방될 찬스가 왔다.


통인 물류정보통신 해외사업부 캐나다 지사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비로소 노동 집약적 업무를 벗어나 글로벌 비즈니스의 로직을 경험하며 스스로 비즈니스의 메뉴얼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업무라는 게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정리하고 콤팩트하게 만들어 제자리를 잡게 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버릴 것을 버리고, 있어야 할 것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었더니 제게 자유가 오더라고요. 그 일이 좋은 비즈니스가 되겠구나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그 방면에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열심히 배우고 희망을 갖고 돌아왔지요."

그리고 그녀가 가진 희망은 대체로 고문이 됐고 때때로 절망이 되기도 했다.


서른다섯! 마음 먹기에 따라 대통령도 될 수도, 재벌이 될 수도 있고, 동네 분식집 주인이도 될 수 있는 그 나이에 그녀는 참으로 어이없어 보이는 창업을 결행했다. 


정경자 대표는 비장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2003년, '통인케어'라는 이름으로 일단 베이비시터와 산모가사 도우미 업무를 시작했다. 베이비시터와 가사 도우미에게 정리수납 업무를 병행시키며 소비자의 이해를 도모했다. 반응은 좋았지만 사업성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잔소리 좀만 하면 누구나 다 하는 일인데,그걸 가지고 뭔 사업을 한대! 교육은 뭐고 시험은 또 뭐래? 솥뚜껑 운전, 양말 팬티 접기, 뭐 이런 걸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는데.. 허 참. 결혼도 안한 애가, 너나 좀 잘 하세요!"

그냥 핀잔이나 주는 건 그래도 상처가 되진 않았다. 


"뭔 소리야! 내가 오직 살림만 수십 년인데 뭘 배우라고. 자격이 되는 사람이 가르쳐야 배우지 ᆢ"

사회적으로 자격을 갖추기 전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 정경자 대표는 일단 공적인 창구를 여는데 집중했다. 


각 구청의 일자리 관련 창구를 찾아가 담당자가 오케이 할 때까지 설득했다.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그러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리, 수납이 새로운 직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수강생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집을 바꾸고 주변 사람들을 바꾸며 전문가로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집안이 바뀌고 가족이 바뀌고 이 일을 통해 스스로에게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냉장고, 신발장, 옷장을 정리하는 메뉴얼들이 개인들에게 자유와 여유를 준다는 걸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2011년, 터널의 끝이 보였다. 


"한국정리,수납 협회"를 설립했고 협회의 공식 교육 실행과 자격증 발급이 공식화됐다.


그리고 2013년, 정부는 신직업 육성책을 확정하고 2014년엔 드디어 정리수납을 육성지원을 하는 신직업으로 선정했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은 어쩌면 수월한 일이다. 세상에 이미 널린 평범한 일을 중요한 일로 만드는 일보다는 말이다. 


"정말 죽고 싶었지요. 나는 비장하게 모두 다 걸었는데 사람들은 전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느냐?'고 말할 때."

때때로 울컥해지는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이 사소한 일이 이렇게 단단한 비지니스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을까?

웃는다. 이 사람은 웃음마저도 진지하다. 


저한테 첫 물음이 " 정말 돈은 버는 거냐? 였지요? 그 질문을 "안녕하세요?" 보다 더 많이 받았어요. 그건 "너 자신을 알라!"보다 더 아팠지요. 그래서 '정말 돈 버는걸 보여 주겠다!'고 작심 했어요. 처음엔 잡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얻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다보니까 돈이 따라 오더라고요"

진짜로 그녀에게 돈이 따라 붙기 시작한 건 소리 없이 5년여가 지났다.


이 일을 통해 '자유'를 얻게하고 인생의 '덤'을 나눠주겠다고 시작한 일이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 주객이 전도 되어가고 있다.(그가 만든 회사의 이름 '덤인' 은 말 그대로 사람에게 덤처럼 부담없이 나눌 수 있는 여유와 자유를 생산하는 곳 이라는 뜻이다)


11만 8000여명의 자격증 있는 전문가가 시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눈치 빠른 기업들이 사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들의 입주 시점과 기업 이전 시에 '덤인'의 역할이 빛을 발하고 경력이 단절 되었던 여성들의 투입으로 기업의 정리수납 업무가 더 빠른 속도로 전문화, 세계화 되어가고 있다.

"이제 중국으로, 태국으로, 인도로, 베트남으로 계속 갑니다. 아시아권의 생활 환경을 바탕으로 아시아 사람들에게 '덤인'이 자유와 여유를 주게 될 겁니다. 지금 11만 8000여명이 앞으로 열 배, 백 배로 늘어나고 세계적인 전문가 집단이 될 겁니다."

주식회사 '덤인'은 단순 정리 수납 뿐아니라 기업의 생산적 업무 동선 설계와 정리 수납, 장비의 위치 선정과 안전동선 설계 등, 향후에는 건설 현장과 군대의 주둔지 동선설계, 그리고 물품정리 분야까지 선제적으로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이 큰 포부를 당장히 밝히는 정경자 대표는 진짜로 산을 옮기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가요? 저 요즘 산에 빠졌거든요.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 있어요. 청계산을 오르는 일이 목숨 건 도전이었는데 설악산도 지리산도 목숨 걸고 오르기는 마찬가지더라고요. 그래서 기왕이면 큰 산을 가기로 한 거지요."

얼마 전 과로로 쓰러져 혈압이 42까지 내려가자 가족들이 임종 준비를 했단다. 그걸 보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됐다는 그녀는 "그야말로 오늘, 이 시간이 '덤'이라는걸 알아요.  감사한 일 이지요. 그 날 부터 산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 " 지리산이 너무 멀고 길잖아요. 조금 옮겨 보려고요. 삽질 메뉴얼만 잘 만들면 되요. 하면 되잖아요!"

특전사 출신도 아닌 그녀가 "하면 된다!"고 외치는 말은 구호가 아니다.


구호 없이 진짜 될 때까지 해 버리는 주식회사 덤인의 대표 정경자는, 진짜 산을 옮기는 일을 언제든 시작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목숨 걸고 위대한 일을 하기는 쉽다. 


그 일은 저지르는 것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소하거나 하찮게 보이는 일로 목숨을 거는 건 때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성공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어려운 일을 성공시키고 있는 여자 정경자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라고 말로만 하는 '특전사'보다도 훨씬 무서운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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