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유승민, 최재형 반만 닮아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9-05 1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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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역선택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권교체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싸우는 모습에 국민은 더욱 실망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당의 공식행사를 ‘보이콧’하는 행태야말로 구태정치입니다. 이제 더 이상의 논란을 그치고 선관위를 신뢰하고 결정을 기다립시다.”


이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선 경선룰의 핵심 쟁점인 역선택 ’허용’이냐 ‘방지’냐를 놓고 대선주자들 간에 극한 대립양상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보다도 더불어민주당이나 열린민주당 등 다른 정당 지지층으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은 ‘역선택 허용’을 주장하며 연일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유승민 전 의원은 정홍원 위원장을 겨냥 "정치 인생에서 이런 난장판 선관위원장을 본 적이 없다"라면서 “경선을 망치지 말고 즉시 짐 싸서 떠나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하태경·안상수·박찬주 등 군소후보들을 모아 전날 5명의 이름으로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기로 한 경선준비위원회 원안을 즉시 확정하라"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공정경선 서약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를 보다 못해 최재형 전 원장은 ‘역선택 허용’을 우려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선관위의 결정을 기다리자고 제안한 것이다.


사실 최 전 원장이야말로 역선택의 가장 큰 피해자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최 전 원장의 경쟁력이 홍준표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지만, 범보수 대선 후보 지지도에선 그들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역선택이 집단으로 이루어진 탓이다.


따라서 역선택을 허용할 경우, 그가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기꺼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후보들이 선관위원장을 향해 “짐 싸서 떠나라”라며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는가 하면,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경선을 ‘보이콧’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 옳지 않은 까닭이다.


실제로 홍준표와 유승민 등은 정권교체에 찬성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나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은 조사와 그렇지 않은 조사를 합치는 방안 등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안들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경준위가 해체되기 직전에 월권으로 ‘알박기’해버린 경선룰에 토씨 하나 손대선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굳이 정홍원 선관위원장을 모셔오고 새로이 선관위를 구성한 까닭이 무엇인가.


역선택을 허용하는 순간, 국민의힘 주자들은 앞다퉈 민주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게 될 것이고,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향한 공세도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래야 민주당 지지층이 그를 지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정권을 향한 공세는 상대적으로 약화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정권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문재인 정권을 찬양하는 후보가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 이런 터무니없는 경선룰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홍준표와 유승민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최 전 원장은 선거에 임한 정치인으로선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선거에 임하면, 그리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면 정치인은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진흙탕 싸움에 내던질 수 있어야 한다.


흙탕물이 튀는 게 두려워 자신의 소신을 접는 건 도덕 선생에게는 어울릴지 모르겠으나 정치인에겐 어울리는 덕목이 아니다.


정치를 하면 반대 의견을 지닌 사람들과 수시로 마주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양보하고 피해버릴 것인가. 때로는 부딪히고 그들을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면 싸움도 해야 하는 게 정치다.


이러다 최재형 전 원장이 중도사퇴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경선을 완주하더라도 정치입문 당시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경선 이후 슬그머니 정계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선 안 된다. 설사 역선택 허용으로 인해 경선에서 패하고 대통령이 못되더라도 정치인의 역할은 많다.


특히 최재형 전 원장과 같은 ‘원칙’ 있는 정치인.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어쩌면 대선 이후 최재형은 홍준표 유승민과 새로운 싸움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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