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사람’이 아니라 ‘제도’가 문제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7-18 11: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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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박병석 국회의장이 "국회가 올해 안으로 개헌안을 만들어 내년 상반기 대통령선거 또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 것"이라며 개헌을 거듭 제안했다.


박 의장은 제73주년 제헌절 영상 경축식에서 "내년 대선 일정이 있다고 개헌 추진을 미룰 수 없다. 오히려 대선 형세를 점치기 어려운 지금이 불편부당하게 개헌할 수 있는 적기"라며 이같이 밝혔다.


87년의 낡은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권은 물론 학계와 시민단체 등 상식 있는 사람들에게 폭넓게 형성돼 있었다.


그것이 완전 내각제일지, 절충형 내각제일지, 아니면 이원집정부제 형태일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여야 국회의원들 역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다.


국회의원 총 300명에게 `개헌 필요성`을 물은 결과, 응답자 178명(응답률 59.3%) 가운데 무려 166명(93.3%)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제73주년 제헌절을 맞아 국회국민통합위원회 정치분과위원회(위원장 유인태)가 SBS와 공동으로 개헌 필요성과 시기 및 개헌 방향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2명은 `매우 필요하다`(57.3%)라고 응답했으며 64명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36.0%)라고 밝혔다.


반면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라는 응답은 12명(별로 필요 없음 9명+전혀 필요 없음 3명)에 그쳤다.


현역의원 전체를 대상으로 개헌 관련 의견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116명(응답률 67.8%), 국민의힘 46명(응답률 44.7%), 비교섭 단체 및 무소속 의원 16명(응답률 61.5%)이 참여했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의원들은 그 이유로는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여 년 동안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71.1%, 118명)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정부 형태) 개편 방안에 대해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및 청와대의 권한을 분산`(70.5%, 124명)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응답은 고작 8명(4.5%)에 불과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을 지켜본 국민도 이제는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 박병석 국회의장실과 SBS가 공동으로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7일~8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23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한 결과, 66.4%(매우 필요 28.8%, 어느 정도 필요 37.6%)가 '개헌이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필요하지 않다'라고 응답한 비율(국민 21.0%)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개헌이 필요한 이유로는 국민 49.4%가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여 년 동안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를 꼽았다. (이 조사의 응답률은 14.0%,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1%포인트이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은 물론 국민 역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제가 ‘제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탓이다.


문제는 유력 여야 대선주자들의 태도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제73주년 제헌절, 고(故) 노회찬 대표님을 기억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고인의 '7공화국'으로 가자는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언급한 뒤, "당은 달랐지만 공감하는 대목이 많았다"라면서도 "저 역시 대통령 4년 중임제, 국민기본권 확대, 지방분권, 토지공개념 강화 등 헌법 개정 필요성에 크게 공감되었다"라고 엉뚱한 방향을 제시했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대통령 4년 중임제는 현행 5년 단일제보다도 3년을 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쁜 제도로 ‘황제 대통령제’라고 불린다.


특히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에 대해 “우리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운영해왔기 때문”이라고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제를 제왕적으로 운영할 구멍이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헌법을 바꿔야지 ‘나는 잘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게 과연 합당한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모든 대통령이 불행한 말년을 보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안위가 걱정스러운 상황이라면 이건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여야 대선 주자들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낡은 체제를 바꾸는 개헌 방향에 동의하고 지금부터라도 후보들이 자신의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가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만 내려놓으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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