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 위기, ‘탈원전’ 탓 아니라고?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7-21 12: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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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정부는 탈원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전력 수요를 낮춰 잡거나 원전의 정비 기간을 늘려 잡았다가 최근 전력난이 닥치자 신월성 1호기 등 원전 3기를 이달 중에 급하게 재가동하기로 했다.


정부가 공공기관에 대해 7월 넷째 주부터 8월 둘째 주까지 오후 2시~오후 5시 사이 30분씩 에어컨 가동을 멈추고 실내온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걸 보면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물론 정부는 매년 여름철 냉방 운영 지침을 내려보내고 있지만, 지금처럼 구체적 시간까지 규정한 것은 2011년 9월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후 10년 만이다.


대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정부가 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낮춰 잡은 게 1차 요인이다. 그래야만 탈원전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말 확정한 9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2020~2034년)에서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가 90GW일 것으로 전망했다. 터무니없이 낮게 잡은 것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닥치기도 전인 지난 15일에 이미 88.6GW까지 치솟은 상태이고, 산업부는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 수요가 94.4GW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평일(12~16일) 전력 예비력은 하루도 쉬지 않고 10GW(기가와트) 아래로 떨어져 ‘블랙아웃’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비력은 전체 전력 공급 능력(정비·고장 제외)에서 그날 전력 수요를 빼고 남은 전력으로, 통상 10GW 이상이어야 안정된 상태라 평가한다. 한마디로 지금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이다.


더구나 기상청이 20일부터 더 심한 더위를 예고한 데다가 산업용 수요까지 몰리면서 2011년 9월 대정전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원전의 재가동 승인을 지연시켜 전력난을 부추겼다는 지적도 있다.


원전의 경제성과 이용률을 낮추기 위해 불필요하게 긴 정비 기간을 잡았다가 워낙 급하니까 신월성 1호기 등 원전 3기를 이달부터 부랴부랴 재가동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 원전이 아니고서는 ‘블랙아웃’을 막을 길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블랙아웃 위기 요인으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원전 긴급 가동 결정을 두고 “결국 탈원전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고 했다. 임승호 대변인도 논평에서 “전력 수급에 대한 정부의 자신감이 허풍이었음이 드러났다”라며 “별다른 이유 없이 원전을 멈춰두었음을 정부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전력 수급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라며 “에너지 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의 블랙아웃 위기는 탈원전 탓이 아니라는 거다.


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 회의에서 “2038년까지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정책이 현재 전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이날 뚱딴지같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하면서 “정치 행보를 위한 핑계이자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방편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을 교묘하게 끌어들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누가 봐도 탈원전 정책으로 대규모 정전사태를 우려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민주당이 이처럼 ‘발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탈원전 프레임’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자극할 대형 악재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탈원전 정책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야권의 대선 주자들을 탄생시키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은 바 있다. 두 사람 모두 출마 배경으로 ‘원전 수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트라우마 탓에 민주당은 ‘탈원전 프레임’을 어떻게든 막으려 들 것이고, 그러다 보니 블랙아웃 위기와 탈원전 정책은 무관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탈원전 정책은 ‘발뺌’한다고 해서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솔직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무리한 탈원전 정책을 펼친 데 대해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가 퇴임 이후의 문 대통령 안위를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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