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성한 ‘고발 사주’ 의혹, 김웅은 말하라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9-06 13: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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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논란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윤 전 총장 측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이 잦아들 기미는커녕 오히려 확산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면밀하게 살펴보면, 고발장을 넘겼다는 시점부터 관여한 인물은 물론, 결과까지 모든 게 엉성하기 짝이 없다.


앞서 온라인 매체 <뉴스버스>는 지난 2일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재직 중이던 지난해 4·15 총선 무렵 2차례에 걸쳐 당시 송파갑 국회의원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고발장에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최강욱·황희석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등 총 11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했다.


먼저 ‘팩트체크(fact-checking)’부터 해보자.


확실한 건 유승민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인 김웅 의원이 누군가로부터 유시민 최강욱 등 총 11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고발장을 전달받았다는 것 뿐이다.


‘뉴스버스’는 그 고발장을 보낸 사람으로 손준성 검사를 지목하면서 윤석열 총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나 손준성 검사는 6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첨부자료를 김웅 의원에게 송부했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그런데도 매체는 무엇을 근거로 손준성을 ‘고발장 보낸 자’로 단정한 것일까?


매체는 손 검사가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을 김 의원에게 보낼 당시 ‘손준성 보냄’이라고 적혀 있는 화면을 공개했다. 그게 근거라는 거다.


하지만 텔레그램 사용자가 자신의 이름을 임의로 변경한 뒤 타인에게 이미지 파일을 보내면 해당 파일에 변경된 이름이 표시되기 때문에 '손준성 보냄'의 당사자가 손 검사 본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설사 손 검사가 그걸 보냈다고 해도 ‘고발 사주’라거나 ‘윤석열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무리다.


시기도 석연치 않다.


보도에 따르면 문건이 건네진 시점은 4·15 총선이 임박한 지난해 4월 3일과 8일이다.


그 시점은 MBC가 3월 31일 ‘제보자 X’를 중간에 끼고 한동훈 검사와 채널A 이동재 기자가 총선에 개입할 의도로 유시민을 잡아넣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보도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윤 전 총장이 바보도 아닌데 야당에 청부 고발을 지시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특히 고발장이라는 걸 김웅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점은 너무나 이상하다.


당시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인 여러 후보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는 당시 윤석열 전 총장의 잠재적 야권 대선 후보 경쟁자인 유승민 전 의원의 핵심 측근이다. 실제로 그는 유승민 전 의원이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고 직접 영입한 인물로 이후 유승민 전 의원의 대변인 노릇을 수행하고 있다. 역선택 경선룰 문제가 불거질 때 줄곧 유승민의 편에 서서 윤석열 전 총장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웅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손 검사가 그에게 추후 문제가 될 게 빤한 고발장을 보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손 검사가 김 의원과 작당하고 윤석열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캠프 총괄 실장인 장제원 의원이 “김 의원은 당시 의원도 아닌 데다 ‘새로운보수당’ 측에 있다가 우리 당에 와서 공천을 받고 출마한 분이다. 그분에게 고발장을 전달할 바보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더구나 총선 전에 야당이 실제로 고발하지도 않았고, 정식으로 그런 내용이 당에 전달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법률지원단장인 정점식 의원도 이날 “청탁 고발장을 받은 사실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선 ‘김웅 의원이 명확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왜 하필 아무 힘도 없고 국회의원도 아닌 김 의원에게, 특히 윤석열 전 총장과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유승민의 오른팔 격인 김 의원에게 보냈는지 너무나도 의아한 까닭이다.


정말 손준성 검사가 직접 김 의원에게 보낸 게 맞나. 맞는다면 뭐라고 하고 보냈는가. 아니라면 누가 보낸 것인가. 혹시 김 의원이 과잉 충성을 위해 누군가에게 불법적으로 정보를 요청한 것은 아닌가. 이제는 김 의원이 칩거를 끝내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다.


정치인들의 통상적인 화법인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발뺌하는 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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