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7-08 13: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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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힌 다음 날, 그의 부친이자 6·25 대한해협해전 영웅인 최영섭 예비역 대령이 노환으로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해사 3기)은 우리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에서 6.25전쟁 최초의 해전인 '대한해협해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다.


그는 이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인천상륙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 2차 인천상륙작전 등 주요 전투에도 참전했다. 무공훈장 3회를 포함해 6개의 훈장을 받았다.


불과 며칠 전, 서울공항에서 치러진 6·25전쟁 70주년 행사 무대에 올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과 함께 태극기에 거수경례하는 모습이 보였는가 하면 지난달 19일에는 한 언론과 장시간 인터뷰를 하기도 했던 탓에 그의 타계 소식이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최 전 감사원장이 정치 참여를 결단하게 된 데에는 부친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


최 감사원장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제청해달라는 청와대의 거듭된 요구를 뿌리치고 현 정권의 주요 국정과제인 탈원전 정책 졸속 추진을 감사하겠다고 나서 더불어민주당의 공개 표적이 됐다.


이에 대해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애초에 걔가 하겠다고 한 게 아니라 국회가 2019년 9월 30일 감사원에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타당한지에 대해 감사를 요구한 거야. 국회가 감사해달라고 하니 하면 되는 거야. 아니면 국회가 도로 감사 요구를 철회하든가. 윤석열이니 누구니 할 것 없이 공무원은 법과 원칙에 따르기만 하면 그뿐이야.”라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가 진척이 없자 지난 4월 20일 국장급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그는 그날 실·국장들에게 부친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대체 무슨 일화일까?


연평해전이 있었던 1999년 6월 당시 TV를 보다가 아들 최 전 원장과 함께 인천 제2함대를 불쑥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내가 TV로 보고 ‘아, 정말 고생이 많겠구나’ 싶어 우리 둘째 애(최재형)가 법원에 있을 때 전화로 “너 바쁘니?”라고 물었어. 우리 애가 시간이 있다고 해서 데리고 가는 길에 수박 30통을 사서 장병들에게 주고 왔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교전수칙으로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이 NLL을 침범해도 경고방송만 하거나 북한 함정을 직접 선체를 충돌하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수밖에 없었어. 격려 차원의 방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해군의 사기가 걱정되기도 해서 제자이자 후배인 2함대 사령관에게 ‘대원들 사기가 어떠냐’고 물었어. 사령관은 ‘맹렬히 짖으면서 사냥감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는 사냥개들의 끈을 잡는 기분입니다”라고 답했지. 사냥개가 사냥감을 바로 물까 봐 자기가 끈을 꼭 잡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야. 나는 크게 안심이 됐어.”라고 전했다.


최 전 원장이 그 이야기를 감사원 실·국장들에게 전하면서 조기 원전 폐쇄 경제성 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를 독려한 것이다.


실제 최 전 원장은 당시 “그때 사령관이 느꼈던 그러한 분위기가 우리 감사원에도 필요하다”라며 “원장인 제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는 모습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감사원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검은 것을 검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검은 것을 희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최 예비역 대령은 처음엔 최 전 원장의 정치 참여를 우려했으나, 최 전 원장이 “짠맛 나는 소금 역할을 어떤 형태로든 해보고 싶다”라며 동의를 구하자 성원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최 전 원장에게 ‘단기출진(單騎出陣), 불면고전(不免苦戰), 천우신조(天佑神助), 탕정구국(蕩定救國)’이란 당부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홀로 진지를 박차고 나가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만, 그럴 때 하늘에 도움을 구하면, 나라를 안정시키고 구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시비곡직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최 감사원장의 강직한 태도는 난데없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오전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아버지께서)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글씨로 남겨주신 말씀은 ‘대한민국을 밝혀라’였다”고 말했다.


이어 “육성으로는 저에게 ‘소신껏 해라’라고 말씀하셨다”라며 “그게 아버님께서 제게 남겨주신 마지막 육성이었다”라고 부친의 유언을 전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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