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이 확장성? 소가 웃는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9-02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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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역선택’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굳이 전문가가 아니어도 일반적인 상식만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만일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했으나 본선에서는 다른 정당 후보를 지지한다면, 그건 ‘역선택’이다.


그리고 다른 정당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는 밀리는데, 범야권 대선 주자 지지율에선 이상하게 높게 나온다면 그것 역시 역선택이다.


그러면 여론조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먼저 지난 20과 21일 뉴스핌 의뢰로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전국 성인 1007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부터 살펴보자. (이 여론조사의 응답률은 4.1%이고 표본오차는 95%의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여론조사결과를 참고하면 된다.)


특별히 이 여론조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 여러 명과 가상 양자 대결을 조사한 유일한 최근의 여론조사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역선택 ‘방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재명 45.4% vs 윤석열 43.3%)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재명 44.5% vs 최재형 38.5%)은 모두 이재명 지사와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역선택 ‘허용’을 요구하는 홍준표 의원(47.8% vs 36.1%)과 유승민 전 의원(46.1% vs 32%)은 모두 두 자릿수 이상의 큰 격차로 이재명 지사에게 뒤졌다.


홍준표와 유승민은 윤석열이나 최재형과 비교할 때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걸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탈자들 역시 홍준표와 유승민 지지자들에게서 많이 나왔다.


실제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는 이재명과의 양자 대결에서도 89.9%가 윤석열을 지지했다. 이재명으로 이탈한 지지는 8.1%에 불과했다.


최재형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 역시 이재명과의 양자 대결에서 73.9%가 최재형을 지지했으며, 이재명으로 이탈한 지지는 19.1%에 그쳤다.


반면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는 이재명과의 양자 대결에서 47.9%만 홍준표를 지지했으며 절반 가까운 49%가 이재명 지지 쪽으로 옮겨갔다. 이탈자 비율이 비록 오차범위 내이긴 하지만 그대로 홍준표를 지지하는 비율보다 높은 것이다.


유승민의 경우는 더욱 황당하다.


유승민 후보를 지지했던 지지자는 이재명과의 양자 대결에서 겨우 45.0%만 유승민을 지지했다. 절반 이상인 51.8%가 이재명 쪽으로 이탈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상대정당의 ‘약체 후보’를 본선 링 위에 올려놓기 위해 국민의힘 경선에 개입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 경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차단책을 강구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실제 중립적인 국민의힘 원로 정치인들도 역선택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 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결정하게 되면 심각하고 경악할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타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경선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을 막는 것은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국의 진영논리가 이렇게 강한 상황에서는 역선택이 없지 않아 있을 수 있다”라면서 “어떤 형태로든 역선택을 막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도 여론조사 설문 문항에 '지지 정당' 대신 ‘정권교체’ 의견을 묻는 절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 등 대선 경선룰 개정 논의와 관련 "선관위는 경선준비위 안을 수정, 적용할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유승민 전 의원은 “경준위가 만든 경선룰에 토씨 하나 손대지 말라”고 막무가내다, 심지어 유승민 캠프 오신환 종합상황실장이란 자는 “당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역선택이 확장성이라는 게 그들의 논리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의 지지가 결국 ‘약체 후보’를 링 위에 올리기 위한 역선택이라는 게 여론조사 지표로 나타나는데도 ‘역선택은 확장성’이라니 소가 웃을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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