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 방지, 유불리가 아닌 상식의 문제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8-30 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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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애초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는 대선 경선 여론조사 문항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지 않기로 했지만, 정홍원 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식출범하면서 ‘선관위에서 역선택 방지룰 도입을 새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무능한 문재인 정권에 분노하며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에겐 참으로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자당 후보를 선출하는데 다른 정당 당원이나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건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에게 자신과 싸울 상대 선수를 고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그러면 자신의 멋진 KO승을 위해 만만하게 보이는 약한 상대 선수를 고를 것은 자명하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어떤 형태로든 역선택을 막는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연유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의 진영논리가 강한 상황에서는 역선택이 있을 수 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과거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도 역선택 방지가 굉장히 논란이 됐었다”라며 “그때도 상대방 후보의 지지율이 일정 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그 여론조사는 선택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조치를 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국민의힘 지지자들보다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와 열린민주당 지지자 등 다른 정당 지지자들로부터 더 높은 지지를 받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은 역선택을 허용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운다.


자당 지지층으로부터 자신이 지지를 받지 못하고 다른 정당 지지층의 지지를 받는 데 대한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 유승민 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역선택 방지를 운운하는 건 정권 교체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상식에 반하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총장이 지난 5일 정홍원 위원장과 회동한 사실을 거론하며 “정 위원장이 역선택 방지조항을 넣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는 얘기가 파다한데, 윤석열 캠프 주장과 똑같다”라고 ‘음모론’을 프레임으로 걸고 나섰다.


이는 정홍원 위원장의 상식적인 판단, 즉 ‘역선택 방지’ 소신에 대해 윤석열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프레임을 걸어 무력화하겠다는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의원은 한술 더 뜬다.


현재 국민의힘 당헌 제 99조 여론조사 특례 부분을 보면 ’당이 실시하는 각종 여론조사에 있어 여론조사 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자와 지지 정당이 없는 자로 제한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대선 후보를 선정하는 여론조사 문항 중 국민의힘 지지자, '지지정당이 없다'라고 답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제한해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당헌은 홍준표 의원이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에 도입한 것이다. 홍 의원은 당시 여론조사에서의 역선택을 우려하면서 이런 조항을 만들어 넣었다고 한다.


실제 지난 2018년 3월 당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중앙·시도당 연석회의에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 의원은 “민주당 지지층이랑 정의당 지지층,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당 후보를 뽑는데 투표권을 줄 수 없다. 당연한 것”이라며 “어차피 본선에 우리를 안 찍을 사람이 역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당헌을 전국위원회에서 바꿨다. 자유한국당과 무당층 지지자를 상대로만 여론조사를 하도록 했다”라고 당헌 개정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런데 홍 의원은 이날 딴소리를 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는 개방 경선으로 가야 대한민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되지 우리끼리 모여 골목 대장을 뽑는 선거는 아니다”라며 역선택 허용을 주장했다.


아마도 3년 전 당헌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직접 당헌으로 만들었던 홍 의원이 이번 경선에서 역선택 허용으로 돌아선 것은 최근 민주당 지지자와 열린민주당 지지자 등 강성 친문의 적극적인 지지로 자신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는 역선택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탓일 게다.


하지만 그게 본선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오랜 정치 생활을 한 홍준표 의원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역선택 방지‘는 특정 대선 주자의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의 문제다. 꼭 다른 정당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야겠다면, 탈당하고 그 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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