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이날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한 4.3 생존 수형인인 고태삼(92) 할아버지와 이재훈(91) 할아버지 등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4월2일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이후 근 1년 만에 받은 무죄판결이다.
수형인 재판을 이끌어온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오늘 무죄 판결은 역사적인 판결로 높이 평가하며 크게 환영한다"고 말했다.
도민연대는 "고태삼, 이재훈 할아버지는 구순을 넘은 나이가 되어서야 평생의 한을 풀 수 있게 됐다"며 "늙고 늙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이제는 명예롭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보내 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밝혔다.
1947년 6월6일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태삼 할아버지는 제주 구좌면 종달리 동네 청년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썼다.
당시 집회 장소를 덮친 경찰관과 마을 청년들이 충돌했고, 고 할아버지는 경찰관을 때린 혐의 등(내란죄·폭행 등)으로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고 할아버지는 경찰관을 때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제대로 된 조사 한 번 받지 못한 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이것이 6.6 사건의 전말이다.
또한 이재훈 할아버지는 1947년 8월13일 선동적인 반미 '삐라'(전단)를 봤다는 죄명(내란죄)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경찰이 쏜 총에 북촌마을 주민 3명이 총상을 입은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다가 마을 사람들이 함덕으로 몰려갈 때 함께 따라갔다.
이 할아버지는 당시 "어디에 사냐"는 경찰의 질문에 짧게 "북촌"이라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바로 구금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삐라를 봤다고 말할 때까지 매를 맞았다"며 "재판을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결국 이 할아버지는 징역 장기 2년에 단기 1년 형을 선고받아 인천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이 사건은 북촌 8.13 삐라 사건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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