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 들고 다니는 탐정’은 ‘별 볼일 없는 C급 탐정’, 차라리 ‘도덕책’을 들라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06-16 15: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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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활동에 있어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법원(法源)은 실정법이 아닌 조리법(條理法)’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탐정은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아니다. 따라서 탐정이 ‘실정법 아바타(전도사)’역을 자처하거나 그에 과도하게 함몰되면 탐정으로써의 존재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명탐정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법령을 준수하되 사안의 ‘사실관계 파악(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서는 설령 자신이 법률적인 제재 등 다소간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있더라도 불의에 눈감지 않았으며, 이러한 ‘의협심(義俠心)’이야 말로 시민들이 탐정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 ‘탐정의 의협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원천이 바로 조리(條理)이다. 조리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의협심은 ‘만용(蠻勇)’으로 치부될 수 있다. 조리(條理, Natur der Sache)란 일반 사회의 정의감에 비추어 반드시 그러해야 할 것으로 인정되는 ‘자연적 이치’ 내지는 공동생활의 원리인 ‘도리(道理)’를 말한다. 조리는 ‘일반 사회의 정의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의 일반 원칙’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조리라는 불문율’은 법률 제정에 필요한 ‘일반 원칙’ 내지는 ‘원재료(原材料)’로 쓰이고 있음은 물론 애매 모호한 법문과 법리를 이해하거나 해석함에 있어 그 기준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성문법과 관습법 등 모두에 근거가 없을 경우 ‘최후의 보충 법원(法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모든 법률과 재판은 조리의 틀 속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조리법이야 말로 실정법의 아버지’라 할 만하다.

특히 우리 민법은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규정함으로써(1조), 민사재판에 있어서 성문법도 관습법도 없는 경우에 조리가 재판의 준거가 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러한 조리의 법원성(法源性)에 연유하여 법학이나 법조계에서는 조리를 아예 조리법(條理法)이라 부르기도 한다.

탐정 활동에 있어 조리에 입각한 판단의 중요성을 설명할 예는 다양하나, 이 지면에서는 가출인 찾기와 관련하여 살펴본다.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허용하는 ‘18세 미만 가출인 찾기’ 외의 성인가출인(18세 이상)이나 잠적자의 소재를 파악하여 보호자 등에게 임의로 알리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또는 프라이버시 침해를 사유로 하는 민사상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출인의 ‘소재나 연락처’가 아닌 ‘생사(生死) 여부’만을 알리는 일은 그들의 권리·이익 등 법익(法益)에 직접 침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는 조리의 정신(일반 사회의 정의와 도덕 차원)에 따라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면 18세 이상 성인가출인의 소재파악은 어떤 경우라도 불가능한 것일까? 탐정의 존재 의미와 조리에 입각하여 살펴보자. 경찰이나 민간(탐정 등) 공히 성인가출인의 ‘소재’를 발견한 경우에는 ①‘가족으로부터 가출인의 생사 여부와 소재, 귀가 의사 등을 알아봐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점을 고지하고, ②가출인의 소재를 ‘가족에게 알려도 좋은지 묻는 동의 절차’를 갖추는 일이 긴요하며, ③이때 귀가 의사가 분명하면 보호자에게 알려 문제될 것이 없다하겠으나, 귀가불원(歸家不願)의 명시적 의사가 있는 경우 그 가출인의 소재를 보호자에게 알리는 일은 위법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출인이 가족에게 자신의 소재를 알리는 일을 거부하고 있으나(거부할 수 밖에 없으나)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때 가출인이 위험과 곤경·궁핍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 곧 또는 머지 않아 범죄에 연루되거나 생명·신체를 온전하게 부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판단되는 경우) 탐정이나 관계 공무원은 조리의 정신에 입각하여 가출인의 의사에 반하더라도(또는 탐정이 자신에 대한 불이익이 예견되더라도) 가족에게 가출인의 소재를 알리는 일을 적극 검토하는 의협(義俠)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경우 ‘사회적 정의’라는 조리에 비추어 볼 때 가벌성(可罰性)이 희박해짐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실 성인가출인 가운데에는 ‘보호자가 자신의 소재에 대해 누군가에게 탐문을 의뢰하여 찾아 왔을 때 원망이나 반감보다는 감사와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성인가출인의 소재를 무단으로 가족에게 알려 ‘위법 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도 상정(想定)할 수 있겠으나, 성인가출인의 생사 또는 소재를 파악한 탐정이 ‘조리에 입각한 판단으로 가족에게 알려 결과적으로 한 가정과 가족의 화평을 도모한 경우’가 소재를 알린데 대한 잡음보다 월등히 많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듯 조리의 정신에 충실한 탐정의 숙고와 판단에 누가 비난을 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표창함이 마땅하리라 본다. 물론 조리에 대한 판단이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것이라면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탐정 활동이 실정법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탐정의 일거리가 과연 몇 될까? 탐정업이 정녕 실정법에만 의존하는 직업이라면 이 땅에서 영원히 필요치 않은 직업일 수도 있다.

실정법과 조리법의 조화로운 이해와 연구는 탐정업(민간조사업) 안착을 위한 또 하나의 토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법전(法典) 들고 다니는 탐정’들에게 차라리 조리의 정신을 익히고 탐정업의 지평을 더 넓일 수 있는 ‘도덕책’을 들라고 권하고 싶다.

*필자/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한국범죄정보학회탐정학술위원장,前경찰청치안정책평가위원,한북신문논설위원,치안정보업무20년(1999’경감),경찰학강의10년/저서:탐정실무총람,탐정학술요론,탐정학술편람,민간조사학·탐정학,경찰학개론,정보론,경호학,공인탐정(공인탐정법)명암,각국의 탐정법·탐정업 비교연구外/탐정제도·치안·국민안전 등 550여편의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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