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와 식량은 국가 안보와 생명선이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7-28 09:27:0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박상배 전 한국가스기술공사 상임감사



라면 가격은 서민물가에 매우 민감한 요소 중 하나다. 최근 고물가와 인플레이션 등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정부가 맨 먼저 물가 잡기의 표적을 라면값에 둔 것도 서민물가의 상징이자 대표품목에서다.

밀 가격을 포함해 내림 새를 보였던 세계 곡물 시장이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 영향으로 급작스레 혼란에 빠졌다. 바야흐로 라면 가격 하나조차 세계정세나 동향을 주시해야만 하게 요즘 서민의 삶이다.

에너지 무기화에 이어 우크라이나 식량을 지렛대로 삼을 기세다. 마치 제갈량이 적군의 화살 10만 개를 모아오듯 러시아가 이번엔 자국의 석유와 가스가 아닌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핵심광물’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그 만큼 높아 보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외에도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겨우 벗어난 세계 경제가 이상 고온의 피해까지 겹쳐, 식량 물가와 에너지 이용료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솟은 사건이다. IMF도 지난주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탈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크게 의존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위기를 진단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곡물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러시아는 자국의 곡물을 무기화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곡물을 무기화해 이를 레버리지로 삼으려는 전략이다. 언제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 같았던 동유럽 일부 국가들의 변심이다. 자국의 곡물 산업이 피해를 보자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중단 조치를 9월까지 연장해 줄것을 요청했다. 반면 곡물 부족으로 인해 아프리카와 같은 빈국들은 식량난과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우크라이나 역시 주요 수입원이 제한되면서 고통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유럽연합(EU)은 흑해로 수출되던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대 회랑은 흑해 대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동유럽 EU 회원국의 육로를 걸치거나 발트해 항구 등을 통해 곡물을 옮길 수 있도록 한 우회로다.

그러나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전망은 불투명하다. 1년 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봉쇄가 터키를 비롯한 러시아 파트너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이런 불안정성이 러시아로 전이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전쟁자금을 보태기 위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허용했었다.

현재 러시아의 움직임을 보면 푸틴은 매우 화가 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현재 언론 보도와 달리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과 구매에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현지시간 24일 루마니아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공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권국인 루마니아를 위험에 빠뜨리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의 우회로마저 차단해 우크라이나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레니항에 대한 공격이 있은 뒤인 24일 오후 국제 곡물가가 6.2% 오르면서 전 세계 식량 안보에도 경고음이 울렸다.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각국의 이해 다툼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왔다. 자국 중심의 이해관계에 따라 역내 집단 내에서도 그렇고, 적대적 관계였던 국가에도 손을 내밀어 에너지 지원을 약속받는 상황이다. 특정 국가의 어려움이 다른 나라에는 큰 도움이 되기도 해서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식량 안보는 에너지와 함께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식량 안보 논리의 근간은 무역분쟁, 전쟁 등으로 식량을 사오지 못하는 사태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 무역 10위권인 우리나라가 곡물을 수입도 못 할 상황에 빠지겠냐는 안이함에 지배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쌀은 이미 남아돌고 밀은 입맛에 따라 변한 것이니, 선진화된 기계영농에 무슨 걱정이냐는 착시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식량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식량 안보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인 식량의 무기화로 전 세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국제 시장에서 식량 가격은 55.7%나 폭등했다. 식량 자급률이 20%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사정도 심각하다. 곡물은 45%나 올랐고 유지도 30%나 상승했다. 식량 생산에 꼭 필요한 비료 가격도 80%나 치솟았다. 국내의 식량 사정은 더욱 심각해질 것임을 뜻한다.

​냉전 종식을 출발점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는 신(新) 안보 논의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국가들의 생존은 탈냉전기 이전의 군사적 충돌과 국가들 간의 권력 경쟁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군사적 위협으로부터의 안보만이 중시되었던 것과는 달리 자원, 식량 등 다양한 국제 안보의 문제들과 이슈들이 떠올랐다. 오늘날 국제질서는 촌음을 다툴 만큼 급변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안보 담론에 대한 요구를 재구성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