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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행(尾行)’이란 사전적(辭典的)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증거를 잡기 위하여 그 사람 몰래 뒤를 밟음’이라고 표현 되나, 실무상으로는 ‘특정한 상황이나 사실관계 파악에 유용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 감지 당하지 않으면서(경우에 따라 감지 당하더라도) 대상자 또는 관계자를 추적·관찰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미행(또는 미행 잠복, 미행 관찰)’이라 함은 기법상 잠복이 수반되는 관찰행위로, 사람 또는 물건의 이동(흐름)을 쫓아 이미 확보된 자료(첩보)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체크)하거나 새로운 단서를 포착하는 외에 용의자 또는 범인을 증거와 함께 현장에서 체포하는 수단으로 널리 선호되고 있다. 실제 국가기관의 수사·정보업무나 언론의 취재, 탐정활동 등에 있어 결정적 단서나 가시적 성과는 미행을 통해 획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떨 때 어떤 형태의 미행과 잠복을 취함이 법률적·기술적으로 적정성과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을까? 탐정업무의 근간이 되는 정보론(情報論)에서 강도(强度)의 경중에 따라 대별한 ‘신중 미행’, ‘근접 미행’, ‘완만 미행’ 등 미행의 3가지 형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신중 미행(愼重尾行)’은 대상자가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미행·잠복·관찰기법이다.
한마디로 은밀·비노출 미행이 그것이다. 동서고금의 탐정업무에 적용되고 있는 전형적인 미행기법이다. 법리상 ‘성공한 미행(대상자가 알아채지 못한 미행)은 그 행위에 따른 피해가 발생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측면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다수설). ‘미행을 탐정업무의 꽃’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탐정이 ‘들키지 않는 신중 미행’에 자신이 없다면 탐정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섣불리 미행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어설픈 탐정 한 명의 미행 실패가 전체 탐정의 무능이나 일탈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미행·잠복이라 할지라도 대상자에게 들켰다면(탐정의 실체가 드러났다면) 이는 역량이 부족한 탐정이거나 그 미행에 관한한 실패한 탐정으로, 경우에 따라 경범죄처벌법 제3조 19호(불안감조성) 또는 동법 제3조 41호(지속적 괴롭힘)에 저촉되어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된다(교사·방조행위도 처벌). 하지만 도로나 지하철, 백화점, 나이트클럽 등 개방된 장소에서 사람을 뒤따르거나 자주 가는 곳에 잠복해 있는 것 만으로는 처벌 하기 어렵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둘째, ‘근접 미행(近接尾行)’은 대상자가 미행당하고 있음을 감지해도 계속 미행하는 경우이다.
근접 미행은 대상자로부터 미행하지 말 것을 명시적으로 고지(경고) 받거나, 대상자가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고도 거침없이 행하는 미행이다. 대상자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경우나 증거인멸 등을 저지하기 위한 경우에 주로 시행되는 밀착관찰이다. 이 근접 미행은 그 양태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 말하는 ‘스토킹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매우 높다.
따라서 범죄예방 및 범죄수사, 범인검거 등에 임하는 정당한 법집행기관 요원들도 자칫 직권남용이나 사생활침해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레 선택(접근)하는 미행기법이다. 법리와 실상이 이러함에도 ‘비권력·임의적 존재(민간인 신분)’인 탐정이 특정인을 대상으로 ‘노골적으로 이리저리 따라붙는 근접 미행’을 행함은 언어도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탐정이 ‘묻지마’, ‘배째라’식 미행·잠복을 업무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는 이미 탐정의 본령이라 할 ‘은밀성’을 훼손한 것으로 탐정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근접 미행’과 유사한 사례에 대한 최근의 판례 하나를 소개해 본다. 제주지법 형사2단독 OOO판사는 ‘탐정 B씨가 A씨의 의뢰를 받고 피해자 C씨를 11시간 27분 미행하는 동안 피해자(C씨)가 운영하는 점포는 물론 아파트 주차장, 식당까지 미행한 일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이는 정당한 사실조사의 한계를 넘은 것으로 보이며 A씨 또한 B씨의 보고를 받고 피해자가 불안감을 느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A·B씨 모두 C씨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A씨에게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교사 혐의’로, 탐정 B씨에게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스토킹행위 혐의’로, 각각 벌금 500만원의 형을 선고했다(2022.12.09).
이 사건 판시 요지를 살펴보건데, “대상자가 미행당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하고도 노골적으로 이리저리 따라붙는 근접 미행의 경우는 단순한 미행이나 사실조사 차원이 아닌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 선고로 풀이된다. 이 판례를 통해 우리는 두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탐정업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미행이 하나같이 스토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탐정의 임의적인 사실관계 파악 목적의 미행은 조리(條理, 사회상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적정한 한계’를 지켜 행해져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향후 탐정활동 방향 설정에 고려되어야 할 유의미한 판례라 하겠다.
이러한 ‘근접 미행’ 기법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탐정업계 안팎 일각에서는 향후 (가칭)탐정법 제정을 통해 ‘탐정업을 공인제(선발·면허제)로 하고, 탐정의 미행업무는 스토킹행위 처벌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야 한다’거나 ‘현재 합법화(직업화)된 탐정업무의 원활성(圓滑性)을 높이기 위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 제2조1항 ‘스토킹행위’ 예외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는 직역(職域) 차원의 볼멘소리를 내고 있으나 이는 탐정인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일부 인사들의 던져보기식 포플리즘이거나 주석취담(酒席醉談)으로나 주고받을 영양가 없는 얘깃거리라 하겠다. 주장할 수 있는 얘기겠지만 국민들의 법감정 등 어떤 측면에서 보던 실현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 어디 몇 있겠는가?
지금까지 언급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사례와는 별개로 ‘근접 미행’ 행태에서 비롯되는 과잉행위에 대한 제재는 또 있다. 미행·잠복을 위해 주거에 침입했다면 주거침입죄가 되고, 미행 또는 스토킹으로 인한 상해가 발생한 경우 형법상 폭행치상 또는 상해죄 등으로 의율된다. 미행 중 미행당하는 사람에게 해악(害惡)을 고지하는 등의 행위가 있었다면 협박죄로 처벌될 수도 있음을 이 지면을 통해 부연해 두고자 한다.
셋째, ‘완만 미행(緩慢尾行)’은 대상자를 계속 관찰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필요한 시간·장소를 정하여 선택적으로 실시하는 미행이다.
‘완만 미행’은 최소 인원 및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고자 할 때 응용되는 관찰 기법이다. ‘신중 미행’과 마찬가지로 대상자가 감지하지 못하게 행해지며 ‘원 포인트(one point) 관찰’이라는 점에서 비교적 위험 부담이 적다. 이 완만 미행은 필요한 시간·장소를 정하여 선택적으로 실시하는 미행이라는 점에서 대상자의 동선(행적)과 관련된 기초자료가 상당량 확보된 경우에 시행하거나 미행 업무와 관련된 감(촉)이 뛰어난 베테랑 탐정에 의해 행해질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즉 하나의 상황(또는 대상자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으로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상정(유추)할수 있는 축적된 경험이 없다면 ‘보다 힘들고 보다 긴 여정’이 되겠지만 ‘신중 미행’으로 전환을 검토함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전공 주임교수, 전 총경, 경찰학박사, 전 대통령실(국가위기관리실) 행정관, K탐정연구소 소장(K탐정단 단장),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법 등 각국의 탐정업(민간조사업)과 탐정법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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