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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프랑스 혁명당시의 민중들은 "빵에 왜 목숨을 걸어, 빵 없으면 케익이라도 먹어!"라고 대꾸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올려 버렸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김준봉 이라는 남자도 빵에 목숨을 걸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길이라 칭하며 혹세무민 하는 자들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그는 외쳤다.
"빵 속에 길이 있다!" 고, 빵 속엔 단팥도 있고 딸기쨈도 있고 생크림도 있다는 건 다 안다. 헌데 "길이 있다!"니.
빵속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청춘을 바쳐 온 남자를 만났다.
김준봉!
그의 명함엔 '싱싱코퍼레이션 대표'라 써 있고 여러개의 브랜드와 법인 이름이 늘어서 있다.
다 빵과 관련된 회사들이다.
그 중 유난히 튀는 브랜드가 보인다.
'델리 프랑스' 설마 그... 미심쩍은 표정을 눈치챈 그가 "놀랬지?" 하는 표정으로 느긋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로 '델리프랑스'를 잡이 온거다!
1919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3,1운동'을 준비할때 그들은 빵집을 만들었다.
'델리프랑스'.
역시 프랑스는 빵이 중요한 나라다.
'빵 만들기'를 예술적 작업으로 승화시켜 제빵기술자를 예인으로 대하는 그들이 "빵 속 에 길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김준봉을 만난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으리라.
'샤넬' 하고도 안 바꾼다는 '델리프랑스' 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델리프랑스'로부터 대한민국 마스터프렌차이즈 유통법인대표라는 권한을 받아온 김준봉 대표는 "빵에 목숨 걸어 본 사람들은 딱 보면 서로 알아요. 그냥 빵 장사가 아니라 이 사람이 빵을 만드는 목표가 무엇인가를 한 눈에 알아보는 거지요"
그래서 물었다. 목표가 무언지?
"행복 해야돼요. 내 빵을 만났을때, 사람들이 환희에 찬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비로소 빵을 만든 이유가 됩니다. 빵을 밀가루로 만들지만 기쁨을 넣어 숙성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빚어 불꽃같은 열정으로 구어내야 합니다. 뿌듯한 감동이 있어야 진짜 빵인 거지요"
솔직히, 그렇게 목숨걸 일인가 싶었다. 빵 하나에...
"다 걸었습니다. 80억이면 제 목숨 다 걸었다고 말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그래도 빵 속에 길이 보이는데 어쩌겠어요. 전재산을 다 부어야지요"
"'야곱의 빵' 그걸 우연이라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나요? 빵장수 야곱이 실수로 빵 반죽에 메모를 흘렸다고요? 그래서 그 메모지가 빵 속에 들어가서 누군가에게 전해 졌다구요? 그럴리가요, 빵만드는 누구도 그런실수를 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실수'를 만드는 사람은 놀라운 마케터 뿐 입니다. 평범을 가장해 예민한진실을 전하고자 했겠지요. 덕분에 빵을 먹고 사는 전세계의 사람들은 야곱의 빵 속에 '길이 있다!'고 믿게 된 겁니다. 제가 발견한 길도 그 중 한갈래인 거지요"
어릴 때 꿈이 '제복을 입고 세상을 지키는 사람'이었던 김준봉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나 충주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경찰행정을 공부하다가 동경제과대학을 졸업한 친형의 '빵 속에 난 길'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가지 않을 그 길을 달려왔다.
그는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즉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생각은 깊고 짧게, 행동은 잘 될 때까지' 빵장수 김준봉은 야곱하고는 좀 다른 빵장수다.
야곱이 평온과 안식을 주는 빵을 만들었다면 김준봉은 기쁨과 환희를 담은 빵을 팔고 싶은 빵장수다.
그의 말 속에서 그의 빵 맛을 느낄수 있다.
제일 잘하는 걸 물었을때, 그는 즉시 "잘 놀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노는 건 최고였다"고 덧붙였다.
정말 후회없이 잘 놀았는가보다. 그런데 청년기 대한민국 남자들의 '놀았다!'라는 말에는 여러가지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잘하는 건 알았고, 제일 좋아하는건?
"여자지요! 그때는, 여자말고 대체 뭘 좋아 할 수 있었겠어요. 교회에서 기도를 해도 교회누나 때문에 하는건데... 축구, 농구, 당구 다 좋아하지요. 그래도 그런 걸 제일 좋아 하는 바보가 어딨어요. 제일 좋아하는 무조건 여자지요"
"그래서 저는 여자가 좋아하는 빵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떤 남자든 자기 여자에게 주고 싶은 빵을 만들자, 그래서 제 빵에서 기쁨과 환희를 느끼기를 바란거지요."
그래서 그는 반평밖에 안 되는 작업 공간에서 꿈을 빚었다.
그러자 여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의 빵이 도곡동 여자들의 선물셋트로 유행되기 시작하던 어느날, "이제, 이 작업공간에서 탈출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럴려면 공부를 해야 된다는걸 알게 되었지요. 원하는 빵을 계속 만들려면 돈을 버는 가게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물정을 알아야 하고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걸 알고나서 전세계를 다녔고 번역기도 사서 돌리고나름 공부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인 C.J 에서 현장경영도 해보고 드디어 벌판으로 나오게 됐지요"
2015년, 그가 최초의 5000평짜리 가든형 빵집 라뜰리에김가(춘천시 동면 만천리326-3)를 산 속에 만들었을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미친듯이 빵을 만들었고 원주점까지 오픈해서 '라뜰리에' 통합방문객 100만명 (춘천 60만명ㆍ원주 40만명)을 돌파하자 또 다른 '미친놈들'이 연달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미칠꺼리를 찾았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로 빵의 '샤넬'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자들이 '샤넬'만큼 좋아 할 빵을 만들 수 있는건 우선 100년이 넘는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다.
그래서 두드렸다. '델리프랑스' 이번에도 모두 다 말했다.'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는 이번에도 그 미친짓을 성공했다.
1919년에 시작한 '델리프랑스'를 대한민국에 심는다.
100년이 넘는 시차를 넘어 2022년 7월8일 김준봉은 델리프랑스 1호점의 깃발을 경기도 광주에 꽂는다.
김준봉의 빵과 경쟁할 유일한 브랜드라고 칭하는 '델리프랑스'와의 경쟁을 하며 미친짓을 계속해나갈 그는 "사람들은 미친짓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저 내 맘이 동경하는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향해 가는 거거든요. 기쁘잖아요? 내가 동경하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것.
"이제, 건강한 빵을 생각하며 앞으로 갑니다. 제 빵을 드시면서도 '어쩌냐! 빵이 본래 건강에 안 좋은 거라던데...' 하시던 어머님이 암투병을 하시고 계십니다. 저희가 만든 빵건강 연구소에서 답을 찾아서 씩씩하게 내 놓겠습니다. 명품이 되기위해서 넘어야 될 산들을 착실히 넘겠습니다"
명품이 되기 위해 세계적 명품브랜드를 내부 경쟁자로 끌어들인 그의 행보가 흥미롭다.
이제 세상의 경챙자는 "빵장수 야곱과 델리프랑스밖에 없다!"며 호쾌하게 웃는 빵장수 김준봉
은 이미 빵장수가 아니다.
그는 "여자를 만족시키면 반드시 돈을 번다!"는 유태인의상술을 아는 사람이다.
어느날, 그의 빵 집에서 빵봉지 대신 샤넬핸드백에 빵을 담아주는 만행(?)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미친 빵장수 김준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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