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과 우울증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0-19 11: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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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ㆍ의학박사


오늘 10월 19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세계 유방암의 날’이다. 유방암은 세계적으로 1년간 226만 여명이 발생하는 여성에서 가장 호발 하는 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신규 환자 수가 2만 명 이상 발생하며 여성 암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구권의 유방암 발생률은 감소 추세인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유방암은 발병률 1위이지만, 5년 생존율은 92.7%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이렇듯 유방암은 생존율이 매우 높지만,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암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디스트레스(원래는 ‘심리적 고통이 함께하는 스트레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지만, 최근에는 암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주로 표현하는 용어로 주로 사용됨)’가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방을 절제한 환자는 유방 절제로 인한 상실감이 크다. 유방은 생존에 꼭 필요한 장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성성, 아름다움, 성적인 매력, 모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유방을 절제하면 남성이 성기를 거세당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디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유방암 환자의 ‘디스트레스’는 때로 암 자체보다 삶의 질을 더욱 저하시킨다. 따라서 유방암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는 ‘디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관리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또한, 암환자들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일반인보다 2~3배 정도 높고, 극단적인 선택은 일반인보다 2배 정도 높다. 일반적으로 암환자의 약 25% 정도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유방암 환자들에게서 우울증은 다른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40% 정도까지 높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유방암의 경우, 유방암의 진단 자체에 대한 충격과 치료에 대한 부작용 예를 들면, 유방암 치료로 인한 폐경 증상과 호르몬 감소가 특히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유방암 환자들은 다른 암환자들보다 우울증의 발생 비율이 높다.

우울증은 정서적 고통뿐만 아니라, 암 환자의 투병 의지를 꺾어 암 환자가 의료진의 지시에 잘 따르지 못하게 하고, 힘든 치료 과정을 끈기 있게 따라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치료에 지장을 초래하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만 아니라 극단적 선택에 까지 이르게 할 수 있다. 또한 우울증은 생물학적으로 면역기능을 떨어뜨리고 암세포의 생성과 전이 확률을 높인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암 환자들의 대부분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찾기보다는 암의 신체적 증상 치료만 필요하다고 느끼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생각조차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방암 환자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은 유방암 초기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치료 초기부터 우울증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병의 전체적인 예후에 좋다. 실제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유방암 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유방암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통해 우울, 불안, 불면 같은 정신 증상뿐 아니라, 통증, 피로감, 안면홍조, 메스꺼움, 가려움 등과 같은 신체 증상의 호전을 경험하며 암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재발율도 낮추고 생존율도 증가시키고 유방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의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암으로 인한 절망이 더 나은 삶을 향하는 희망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 도 한다. 암과 같은 극심한 ‘디스트레스’ 즉, ‘트라우마’ 이후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경험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자체가 만만하지 않다. 힘듦의 연속이다. 간신히 버텨 큰 힘듦 없이 살아간다 싶을 때,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 했던 일이, 또 다른 힘듦으로 찾아온다. 왜냐하면, 인생의 디폴트 값(default value) 즉, 기본 값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고통에서 예외인 인생은 없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동안 고통은 숙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큰 도전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엄연한 현실'의 한 부분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유방암에 걸렸나?” 하면서 분노하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암에 걸렸다. 모든 게 끝났다. 치료해서 무엇 하나?” 하면서 절망에 빠진다면 고통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다.

유방암에 걸렸어도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희망'으로 나아가자. 희망은 느낌(feeling)이 아니다. 희망은 행하는 것(doing)이다. 신체적 치료든 정신적 치료든 적극적 치료 행동을 하자. 희망 즉, 행하는 것(doing)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항암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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