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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전체 세금 수입이라 할 수 있는 ‘총국세 수입’이 49.2% 증가한 최근 5년간 직장인을 대상으로 징수하는 근로소득세 수입은 같은 기간 68.8%나 증가했다.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임금 탓에 가뜩이나 형편이 나빠지고 있는 데다 소득이 훤히 공개돼 ‘유리 지갑’으로 불리며 에누리 없이 꼬박꼬박 내야 하는 월급쟁이인 직장인의 입장은 자기 세금만 한 치도 어김없이 걷어가는 정부가 야속하다 못해 원성이 잦아지고 불만이 커지고 있다.
지난 2월13일 공개된 기획재정부 ‘세목별 국세 수입 실적’에 따르면 2022년 정부는 근로소득세로 57조4000억원을 거둬들였다. 사상 처음 5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최근 1년 사이 21.6%인 10조2000억원이 늘었다. 5년 전인 2017년 34조원과 비교해 보면 68.8%인 23조4000억원이나 증가했다. 2017년 34조원이던 근로소득 세수는 2018년 38조원, 2019년 38조5000억원, 2020년 40조9000억원, 2021년 47조2000억원으로 빠르게 늘었다. 4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년 만인 2022년 50조원대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총국세와 자영업자 등에 부과되는 종합소득세는 각각 49.2%와 49.4% 늘어난 반면 유독 직장인들의 근로소득세만 다른 세수 증가분보다도 더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직장인의 근로소득세가 총국세와 자영업자보다 단기간에 무려 20%포인트나 더 많이 증가했다는 말이다.
당연히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는 것은 마땅하다. '대한민국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공평 과세를 전제로 할 때의 법리다.
직장인들의 세금 부담은 물가 급등기에 더욱 커진다. 고물가로 실질소득은 제자리인데 세금은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하므로 그 자체로 세금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근로소득세는 ‘소리 없는 증세’라고도 한다. 이는 월급·상여금·세비 등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근로자의 급여에서 원천 징수되는 탓에 매출을 숨길 수 있는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구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실질 근로소득은 439만7088원으로 전 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2022년 소비자물가가 5.1% 상승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7.5% 이후 2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점을 고려하면 2022년 연간 실질임금은 전년보다 더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직장인이 감당해야 할 건강보험료 등 준조세도 갈수록 늘고 있다. 소리 없는 증세만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올해부터 직장인은 건강보험료율이 올라 월급의 7.09%를 내야만 한다. 월평균 2069원으로 연간 총 2만4828원을 추가 부담하는 셈이다.
반면 직장가입자와 그 피부양자를 제외한 대상인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건보료는 2022년보다 1598원이 늘어난다. 설상가상으로 물가 상승은 재화 및 용역의 최종가격에 10%를 부과하는 부가가치세 세수도 크게 늘린다. 부가가치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 서민층이 부유층보다 소득 대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내는 ‘역진세(逆進稅│Degressive tax)’에 해당한다.
고물가 영향으로 정부의 조세 정책이 소득 재분배를 가져오기는커녕 빈부 격차만 키우고 조세의 양극화만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부자 감세’ 정책으로 2022년 고가주택 소유자 및 다주택 소유자가 내는 종합부동산세를 전년보다 무려 1조8000억원이나 줄여줬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연말정산 환급금 폭탄이 직장인들의 불만을 키우는 결정타가 될 우려가 크다. 지난 1월24일 국세청에 따르면 2021년 귀속분 연말정산에서 ‘납부할 세액’이 있는 근로자는 393만4600명이었다. 이는 2021년 근로소득을 신고한 전체 근로자 1995만9000명의 19.7%다.
근로자 5명 중 1명은 미리 뗀 세금이 실제 내야 할 세금보다 적어 추가로 세금을 더 납부하게 된 것이다. 최근 5년간 추이를 보면 추가 세액 납부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정부의 세액공제가 늘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추가 세액 납부자가 낸 평균 세금도 꾸준히 늘어 1인당 평균 97만5000원에 이른다. 연말정산 환급 추세를 고려하면 올해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세금을 토해내는 근로자 수와 금액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이른바 ‘13월의 월급’이 아니라 ‘13월의 세금’이 된 셈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월급 빼곤 다 오른다’라고 하거나 ‘월급쟁이가 봉’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월급쟁이들은 뭉텅뭉텅 빠져나가는 세금에 허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근로 의욕을 감퇴시키는 근원(根源)으로 작용해 궁극적으로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최근 몇 년 새 각종 사회보험료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름이 한가득 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로 꺾이는 데 반해 물가상승률은 3%대에 이를 것으로 먹구름만 진하게 드리우고 있다. 물론 근로소득세가 늘어난 것 자체를 탓할 순 없다. 하지만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 증가에 맞춘 합리적 상승이어야 불만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저소득층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라는 말은 결단코 아니다. 수입이 유리알처럼 뻔한 직장인들에게 무거운 세금 짐을 지우는 것은 마른 수건에 ‘더 쥐어짜자는 식’밖에 안 된다. 정책적 성과가 모호한 공제제도들의 재정비부터 시작해야 한다. 상습적인 고액체납자에 대한 추징과 불법·편법을 동원한 탈세 의심자에 대한 세무조사 강화로 조세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급등하는 물가로 인해 실질소득은 그대로인데도 자동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구조는 결단코 공정하지 않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지난해 말 정부와 정치권은 세제 개편을 통해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을 조정했었다. 6%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을 1400만원 이하로, 1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 1400만∼5000만 원 이하로 각각 올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세율이 고정되는 바람에 일부 납세자로만 수혜자가 제한되면서 중간층 월급쟁이들의 세 부담은 늘어났다. 더구나 개편안이 반영돼도 올해 근로소득세는 작년보다 더 늘어 60조원마저 상회하리라는 게 정부 전망이다.
불합리한 부분이 드러났는데도 고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職務遺棄)이자 책임방기(責任放棄)가 아닐 수 없다. ‘행정편의주의’에 기인한 월급쟁이만 쥐어짜는 낡은 과표는 전면 손질해야만 한다. 소득세 체계에 물가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체계를 마련하여 장기 안정적인 세입 기반을 확충하고 과세 형평성을 제고시킴으로써 조세원칙에 맞게 과표 개혁에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자영업자나 불로 소득자의 소득은 파악하기가 무척 어려운 면이 분명 있지만 이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국세청이 할 일이자 책무다. 직장인과 자영업자 간 과세 불공평은 조세 양극화를 키우고 세제와 세정에 국민 불신을 조장하고 국가 재정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평성이라는 조세 정책의 기본 원칙부터 재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화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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