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유체이탈 화법’에 뿔난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04-26 12: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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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야 합의 사흘 만에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재안 속 검찰의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 가운데 부패·경제만 남기고 정치인들이 주요 대상인 공직자범죄와 선거 범죄 등은 쏙 빼버린 것에 대해 '야합'이라는 비판이 거세자 재논의를 공론화한 것이다. 당연한 결정이고 그 결정을 지지한다.


이는 권성동 원내대표 주도로 합의된 중재안이 당 안팎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파기된 것으로 이런 일련의 소동에 대해 권성동 원내대표는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의 ‘유체이탈 화법’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유체이탈 화법이란 자신이 관련된 얘기를 마치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인 양 '사돈 남 말 하듯' 하는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26일 발언이 꼭 그런 식이다.


중재안 합의를 주도한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했다 하더라도 국민의 동의를 얻는 게 우선"이라며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합의안은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재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면 '정치 야합', '셀프 방탄법'이라는 국민의 지탄을 면할 길 없다"라며 "민심에 반하는 중재안을 지체없이 수정해 공직자·선거 범죄를 포함한 4대 범죄 수사권을 검찰 남기자는 재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중재안을 주도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말하는 권성동 원내대표 자신이다.


중재안이 '정치 야합', '셀프 방탄법'이라는 국민의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걸 몰랐다면, 원내대표 자격이 없다. 법조인이 아닌 필자도 중재안을 보자마자 이건 정치인들을 위한 야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검찰 출신이 그것도 몰랐다면 무능한 거다.


더구나 그 과정을 보면 무능했다기보다는 검찰에 대한 사감(私感)이 앞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앞서 국민의힘은 의총 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헌법정신 파괴',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 등 민주당의 잘못을 따지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으나 의총에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그런 분위기를 주도한 게 권성동 원내대표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22일 의원총회에서 자신이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당시 "모욕을 당했다"라며 검수완박 중재안을 의원들에게 설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모 검사에게 중진의원인 자신이 모욕을 당했음을 재차 강조하면서, '검수완박 중재안'을 통해 공직자 범죄·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제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의원들에게 거듭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가뜩이나 선거법 때문에 시달려 본 의원들 사이에서 받아들이자는 여론이 생겼고, 의총에서 중재안이 통과됐다고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웅 의원이 결사반대하자, 권 원내대표는 '잘못하면 검찰 기득권을 지켜주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라며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권 원내대표가 중재안 합의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투영시켰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그는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것으로 향후 집권당이 될 정당의 원내대표 자격이 없다. 권 원내대표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으로 기소돼 수사 및 재판을 받았고 6년 만인 올해 2월 무죄가 확정된 바 있다.


더구나 그는 주말 내내 중재안 합의에 대해 본인 성과라며 자랑하고 다녔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안철수 인수위원장에 이어 윤석열 당선인까지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는 점에서 향후 그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부호가 찍혔다.


그가 앞으로 청와대·정부와 이견을 조율할 수 있을지, 소속 의원들의 뜻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특히 합의안 파기로 인해 거대 야당과 신뢰 관계를 쌓아갈 수 있을지 등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로는 원내대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단 한 번의 실수라고 하기에는 잘못이 너무나 크다. 따라서 검수완박 문제를 처리하고 원내대표 직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이 나와야 할 것이다.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간판을 달고 나오는 후보들을 위해서라도 선언은 빠를수록 좋다. 지금과 같은 유체이탈 화법은 국민의 화를 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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