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개헌론’ 응원한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1-12-01 12: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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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하기 며칠 전에 만났다.

 

둘째 아들의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손 전 대표는 호탕하게 웃으며 기꺼이 주례를 서겠노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뜬금없이 이번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했다. 마치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 대선판은 이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양강구도로 진행되는 상황이어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데 자칫 그간 그가 쌓아 올린 명예가 실추되지나 않을까 걱정된 탓이다.


전문가들이 꼽는 ‘대통령감 1순위’이면서도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번번이 경선 문턱에서 좌절을 맛보았던 그가 또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자신의 출마 선언이 이재명과 윤석열 양 진영으로부터 온갖 조롱과 멸시가 쏟아질 것을 알고 있다면서 그 모든 걸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이번 대선에서 할 역할이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당선 가능성보다도 ‘역할’에 방점을 찍은 대선 출마라는 것이다.


그의 역할이라는 게 뭘까?


손 전 대표는 “지금 대선판 진행되는 걸 보면서 ‘야, 이거 어떻게 나라가 이렇게 가지? 이거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망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인신공격, 마타도어,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자신이라도 나서서 ‘개헌’을 외치는 광야의 소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이번 선거는 그 누구도 ‘개헌’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모든 후보가 개헌을 언급할 만큼 ‘개헌’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것에 비하면 정말 이상하다.


사실 ‘87년 낡은 체제를 청산해야 한다’라는 공감대는 이미 전문가들과 국민 사이에서 폭넓게 형성돼 있다.


전두환 정권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단지 간선제에서 직선제로만 바꾼 게 87년 체제다. 그걸 선진 유럽 국가처럼 연정이 가능한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87년 체제인 6공화국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이 감옥에 가거나 자신들이 감옥에 가는 불행한 임기 말을 보냈다. 울산 부정선거 연루 의혹 등으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 역시 퇴임 후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상태다.


이번 대통령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도 서로 상대 주자를 향해 “감옥에 갈 사람”이라고 하는 마당이다.


그렇다면 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인 것이다.


국민은 분명히 민주적인 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는데, 정작 대통령은 그를 ‘왕’으로 여기는 주변 인사들에 둘러싸여 제왕적 권력을 누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그 결과 국민이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를 철폐하고 권력을 분산해 ‘연정’이 가능한 방식으로 개헌해야 한다는 게 손학규 전 대표의 주장이다.


필자 역시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소속 정당도 없고 돈도 없는 그가 광야에서 외치는 요셉을 닮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시리다. 유권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 출마한 모든 주자, 특히 당선 가능성이 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제왕적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다당제와 연정이 가능한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약속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승자 독식의 제도로 인해 국민이 양 진영으로 갈라지는 국론분열을 방지할 수 있고, 우리나라가 성숙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고독한 요셉의 목소리가 메시아 예수의 존재를 알렸던 것처럼 손학규의 제왕적 대통령제 철폐 주장이 ‘제7공화국’ 탄생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손학규 전 대표의 4번째 대선 도전은 ‘당선’보다도 ‘개헌’에 방점이 찍혀 있기에 그 목소리에 순수성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건 ‘노욕’이라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조롱받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미력하나마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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