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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헌 80조에 따르면 당 사무총장은 당직자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동시에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의 왼팔과 오른팔 격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차례로 구속되었는데도 당은 이들에게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당한 80조는 유명무실한 유령조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헌 80조를 개정하면서 당무위에서 ‘정치 탄압’ 등으로 판단할 경우 당직을 그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21일 S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일과 관련해 당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며 “김 부원장은 기소가 됐으니 당헌 80조 적용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지난 8일 김 부원장이 8억 원대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후 처음으로 공개적인 당헌 80조 적용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당 조응천 의원도 이날 BBS 라디오에서 “당헌 80조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고 윤리심판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라며 “일단 조치하고, 정치 탄압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당무위원회를 열어 예외로 인정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이) 당헌에 따라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민주당이 김용과 정진상에 대해 당헌 80조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재명 대표에게 그 영향이 미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최측근인 그들의 공소장에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무려 200여 회나 등장한다. 사실상의 이재명 공소장인 셈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이재명 대표가 소환조사를 받게 되거나 기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당헌 80조를 적용한 전례를 만들면, 이 대표 역시 그 조항으로 인해 기소되는 즉시 당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대표로서는 ‘방탄조끼’를 벗어야 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비명계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당 역대 최고 득표율(77.77%)로 당권을 쥔 것이 당의 미래엔 독이 됐다”라며 “이 대표의 성향상 측근들이 구속돼도 대표직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과 정진상에게 당헌 80조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다. 어떤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대표직을 움켜쥐고 내려놓지 않겠다는 이재명 대표의 의지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지도부는 ‘충성경쟁’ 하듯 이재명 지키기에 혈안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진상 실장 구속에 대해 "본질은 윤석열 정권 차원의 이재명 죽이기"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임선숙 최고위원은 "야당 대표를 조준하고 있는 수사, 정치 탄압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라며 "이재명 대표를 옭아매려 이른바 '정치공동체'라는 것을 만들어놓고 이재명 대표에게 사법 리스크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검찰이 이재명 대표와 누구의 정치공동체라고 하는데 저도 이 대표와 정치공동체다. 여기 있는 최고위원, 국회의원, 당원 다 정치공동체지 뭐가 잘못됐나"라고 가세했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아예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 "자기 무능을 덮기 위해 야당 당 대표에 대한 탄압을 자행했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재명 대표에게 ‘당헌 80조’를 적용해야 한다는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험악한 분위기가 당 지도부에 형성된 상황이다.
민주당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일까?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린 의원들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그들 중에 당내 세력을 모아 이 대표와 정치적으로 승부를 걸 인물이 없는 탓이다. 결국,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촉구할 동력도 없고, 이 대표가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도 없어 당은 앞으로도 ‘이재명 사법 리스크’라는 블랙홀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게 됐다. 그 결과가 총선 참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재·보궐선거와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총선까지 참패하면, 민주당은 이재명과 동반몰락하는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재명 눈치 보기에 급급해 당헌마저 무시한다면 민주당은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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