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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후보 모두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비록 뒤늦게나마 주요 정당 후보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권한을 내려놓을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말로는 ‘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분권의 핵심인 ‘개헌’에 대해선 전혀 엉뚱한 방향을 제시하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아니면 다소 모호한 태도로 인기영합적인 주장을 하는 까닭이다.
우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뚱딴지같이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를 들고 나왔다.
이는 ‘4년 중임제의 폐단’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제안이거나 8년 집권의 ‘황제 대통령’을 꿈꾸는 욕심에서 나온 제안이거나 둘 중 하나다.
실제로 이 후보는 18일 MBN ‘뉴스와이드’ 인터뷰에서 “5년은 기획해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데 결과를 볼 수 없는 기간”이라며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순차 개헌해 기본권 강화. 자치분권 강화, 경제적 기본권과 환경에 대한 국가책임 등을 명문화해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4년 대통령 중심제’와 ‘권한분산’은 모순(矛盾)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
87년 낡은 제왕적 대통령 체제를 이제는 시대에 걸맞게 분권형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는 이미 지식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이다. 그걸 알기에 여론을 의식해 ‘분권’을 거론하면서도 실제는 5년 대통령을 3년 더 연장이 가능한 ‘8년 대통령제’를 만들어 ‘황제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심 아니겠는가.
실제로 그는 ‘개헌에 합의할 경우 임기를 1년 단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겠느냐”라고 답했다. 5년 임기를 4년 임기로 줄인 후 자신이 다시 출마해 4년 더 대통령을 해 먹겠다는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그런 욕심이 반영된 ‘4년 중심제’ 체제에서 ‘분권’은 형식에 그칠 것은 불 보듯 빤하다.
그러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어떤가.
그 역시 현재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권한이 과도하게 부여되는 만큼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 대해선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윤 후보가 지난 13일 한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청와대를 범부처 이슈에 집중하는 슬림한 조직으로 바꾸고, 각 부처 장관에게 전권을 주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런 이유다.
그런데 분권을 헌법으로 명문화하는 데에 대해선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실제로 윤 후보는 ‘개헌을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개헌 얘기까지는 제가 대선 준비하면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 문제는 지금 언급하지 않겠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분권은 해야 한다면서도 개헌은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대체 뭔가.
분권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나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개헌의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개헌인지에 대해선 입장이 모호하다.
안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4년 중임제개헌’에 대해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대통령을 8년 하겠다는 주장"이라며 "국민을 속이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임기를 4년 중임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제왕적인 권력을 분산하는 것으로 권력 축소형 대통령제"라고 밝혔다.
여기까지는 맞다. 이재명 후보의 개헌론은 사실상 ‘8년 대통령제’로 최악의 방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다가 좌절된 개헌론과 같다. 이에 대한 안 후보의 비판은 비교적 정확하다.
그런데 안 후보는 자신이 언급한 ‘권력 축소형 대통령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내각제에 대해선 "다당제가 가능한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통해 다당제가 확립된 다음에 내각제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옳지 않다"라고 반대했고, 이원집정부제에 대해서도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총리가 되면 어떻게 되겠나. 5년 내내 싸울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면 어떤 분권형 개헌인지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데 그런 게 없다.
이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건 시대적 요구다. 따라서 여야 주요 정당의 후보들은 개헌의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분권 필요성에 대해선 모두 동의한다면서 개헌논의를 회피하는 건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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