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짓”이라는 文이 “무례하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0-05 13: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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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이른바 ‘서해 공무원피살 사건’과 관련, 감사원의 서면 조사 통보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격하게 반발하자 감사원은 더는 서면 조사를 추진하지 않을 계획이다.


문 전 대통령이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발끈하는 상황에서 시도해도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감사원의 서면 조사 통보를 받은 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은 누가 보아도 상식적이지 않다.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발끈했다는데 어이가 없다.


절대 왕조시대에 군주가 아랫사람에게 ‘감히 짐(朕)에게’라고 꾸짖는 것처럼 들리는 탓이다. 아직도 왕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사실 감사원은 국가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전직 국정원장들이 조사를 거부했더라도 확보된 자료와 진술 등을 토대로 전직 대통령에게 질문서를 보내는 것은 조사의 기본 원칙이다.


더구나 이런 서면 조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만 있는 특별한 일이거나 기이한 현상도 아니다.


전례가 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은 이회창 당시 원장 주도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각각 ‘율곡사업’, ‘평화의댐’ 감사를 진행하며 서면 조사를 통보했다. 김 전 대통령 역시 퇴임 직후인 1998년 외환위기 관련 서면 조사를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방 관련 사안으로 질의서를 받았으나 질문 수령을 거부했다.


문 대통령도 이처럼 당당하게 서면 조사에 응하거나, 그것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수령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국가기관이 서면 질의서 하나 보냈다고 “무례한 짓”이라며 노발대발하며 그런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것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온당한 처사인지 묻고 싶다.


그 의도는 분명하다.


자신을 지지하는 지지세력을 결집해 감사원의 감사와 검찰 수사를 빠져나가려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결과가 문 대통령 본인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우선 당장은 그 효과를 보고 있다.


실제로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지리멸렬하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4일 대법원 국정감사 시작 전 각자 자리 앞에 ‘정치탄압 중단하라’라는 피켓을 내걸고 시위하는 등 ‘똘똘’ 뭉쳤다.


이재명계와 문재인계로 나뉘어 갈등을 빚던 거대 야당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수사의 칼날을 피하려고 공동 전선을 구축한 셈이다.


그로 인해 당장은 야당의 목소리가 커졌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민주당은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동시에 무너지는 ‘위험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특히 감사원이 서면 조사를 포기하는 대신, 중간 조사 결과 발표 때 문 전 대통령 조사 필요성을 명시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는 점이 문 전 대통령에게는 악재(惡材)가 될 것이다.


감사원은 조만간 중간발표를 하면서 감사 과정에서 위법이 드러난 사항에 대해선 검찰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검찰 수사 의뢰 대상에 문 전 대통령의 포함 여부는 좀 더 따져보기로 했지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해 조사 필요성을 명시할 가능성이 커졌고, 그로 인해 검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단지 처음부터 피의자가 되느냐 아니면 일단 참고인 조사부터 받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감사원의 서면 조사를 퇴짜 놓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택이 되레 ‘자충수(自充手)’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업자득이다.


다시 말하지만, 전직 대통령은 성역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법 앞에 평등하게 감사원 조사와 수사를 받는 것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정당 조사를 자신이 절대 왕조의 왕이라도 되는 듯 감히 “무례한 짓”이라고 호통치는 그대야말로 국민 앞에서나 유족들 앞에서 예의가 아니다. 무례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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