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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의원이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겠다”라는 선언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앞서 이재명은 대선 당시 충남 논산 화지중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를 한 뒤 한 식당 앞 단상에서 갑자기 즉석연설을 통해 이 같은 선언을 한 바 있다.
당시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이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니 질겁했다”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으나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수십여 년을 이어온 정통성 있는 민주당이 설마 한 사람의 정당으로 재편되겠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게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그냥 ‘이재명의 민주당’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의 당, 이재명에 의한 당, 이재명을 위한 당’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당내에서는 여러 차례 이재명이 출마하면 당이 쪼개질 것이라며 불출마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일 MBC 인터뷰에서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분당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당 대표 출마 뜻을 밝힌 3선 김민석 의원과 4선 의원을 지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분당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이재명은 이런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마 의지를 다지고 있다. 자신이 당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당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탓이다.
그러자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아예 발 벗고 ‘이재명 도우미’로 나선 모양새다.
실제로 전준위는 4일 전체회의에서 현행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는 당 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으로 친명계 의원들이 줄곧 요구해온 지도체제다. 8.28 전당대회에서 이재명이 당 대표로 선출되면 전권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흔들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전준위는 또 전당대회 선거인단 비중도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일반국민 25%, 일반당원 5%'로 변경했다. 기존보다 대의원 투표 비중을 15%p 줄이는 대신,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이재명에게 유리하도록 일반 국민 여론조사 비중을 그만큼 늘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인 상황에서 전준위가 전대룰 변경을 통해 이재명에게 날개까지 달아준 셈이다.
마치 전준위가 이재명에게 ‘꽃길’을 깔아주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현행 당헌·당규상 국회의원 후보자 자격 심사를 맡는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은 최고위의 심의를 거쳐 당 대표가 임명하게 돼 있다. 이에 대해 비명(非이재명)계는 '심의'를 '합의'로 개정해 공천 과정에 최고위원의 주장도 반영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공천학살'을 우려한 제동장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당 지도부와 전준위는 공천권 문제마저도 이재명의 손을 들어주려는 눈치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에 당헌·당규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서 당 대표가 최고위원들하고 상의하지 않고 결정했던 내용이 일부 있다. 그것을 보완하는 정도의 내용이지 공천권과 인사권에 관한 당 대표의 권한을 약화하는 방안은 전혀 논의하고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안규백 전준위원장도 "심의든 합의든 협의든 의결이든 그것은 운영주체자의 능력에 달렸다고 생각한다"라며 최고위원 권한 강화에 회의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면 이재명은 당 대표로 선출되는 순간 당의 전권을 쥐게 될 뿐만 아니라 차기 총선에서 ‘공천학살’도 가능한 ‘제왕적 대표’가 되는 셈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는 것이다.
과연 이러고도 당이 쪼개지지 않고 차기 총선 때까지 한 몸으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공천학살’이 가능한 ‘제왕적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에는 이제 ‘민주’가 없다.
이재명을 살리려고 ‘민주’를 죽여버린 것이다. 그런 민주당은 공당(公黨)으로서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은 것은 오로지 개인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이재명 당’뿐이다. 그런 정당이 차기 총선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는가. 어림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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