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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 바이든 정부와의 새로운 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반도체칩4동맹이다.
IPEF 주요가입국인 호주, 베트남, 인도 그리고 반도체칩4동맹인 일본, 한국, 대만을 보면 중국을 둘러싼 봉쇄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다.
중국을 첨단반도체 투자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은 ‘반도체 대륙봉쇄’라고 칭할 만하다.
미국의 반도체 대륙봉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맹국과 우방국의 절대적인 협조와 신뢰를 구해야 하기에 한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급망 재편에 적잖은 기대를 내심 가질 수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발효되면서 미국의 반도체뿐만 아니라 자동차분야의 생산기지를 미국내로 유인하는 등 본격적인 리쇼어링(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긴 기업들이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니어쇼어링(해외 자국기업들을 인접 국가로 아웃소싱)이나 프렌드리쇼어링(공급망 이슈를 동맹국, 우방국과 협력으로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기대감을 한국이 가질 수도 있으나, 미국내 산업생태계 복원을 추진하고자 하는 바이든 정부의 냉정한 기류를 감안할 때 한국입장에서는 난감하기 그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엘앤에프의 미국 공장 건설을 불허했다는 소식은 앞으로 기류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업생태계 조성이 외교안보적 목적의 중국대륙 봉쇄를 위한 불가피한 자구책에서 나왔다면 그 성공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중국이 대체불가한 세계성장엔진으로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GDP 성장세의 34%를 차지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가까운 미래의 최첨단 반도체 주고객이 될 중국을 미국이 배제한다는 계획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산업생태계의 근본적 변화와 요구를 수용한 미국 정부정책의 기획에서 바이든 정부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단순히 정리하면 ‘기계’와 ‘정보통신’의 융합을 의미한다. 그 상징적인 존재가 무인공장이다.
무인공장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한 ‘완전 자동화공장’으로서 자동차, 식품음료, 전기전자, 항공방위, 석유가스, 의류 및 섬유, 화학, 헬스케어 및 제약 업종 등 제조업의 거의 전분야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다.
무인공장은 반복적 업무를 실수 없이 노련하게 일할 수 있는 저임금의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보통신기술 전문가와 소수의 기계관리자만 있으면 된다. 입지조건에서도 무인공장은 안정된 전기공급과 충분한 물 그리고 미국·유럽 등 주요 소비국 대도시와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 그 장점은 배가된다.
그러한 입지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지역이 미국의 변두리 네바다주라고 할 수 있다. 콜로라도강이라는 풍부한 수원, 후버댐에서 공급되는 안정된 전기에너지, 실리콘밸리의 높은 수준의 전문인력 그리고 로스엔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라는 인접한 대도시.
그 이외에도 미국은 저렴하고 경쟁력 갖춘 무인공장 부지를 얼마든지 자국내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중국과 화해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미국내 산업생태계를 복원하고나서 중국에게 러브콜을 해도 전혀 이상할 일 아니기에 시간은 미국편이다.
미국의 반도체 대륙봉쇄 외교정책은 동맹국이나 우방국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를 보다 빨리 실현할 명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두 나라를 모두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만큼 상당한 물리적 거리가 그 둘 사이에 놓여져 있다.
한국은 서해라는 호수 건너에 중국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의 셈법이 미국과 같을 수는 없다. 우리의 산업생태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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