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다당제의 길을 열 때다

고하승 / gohs@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1-03 14: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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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고하승



우리 젊은이들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앞에서도 정쟁을 일삼는 거대 양당의 모습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집권당과 정부는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제1야당은 젊은이들의 희생을 마치 자신들에게 주어진 기회라도 되는 양 득의양양하다.


정치권의 진정한 애도는 ‘침묵’이라며 정쟁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런 목소리는 양당의 ‘패거리’ 정치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는다.


국민의힘은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좇아 우르르 몰려다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로 불리는 강성 팬덤 지지층에 끌려다니기 일쑤다.


이처럼 다수가 소수의 목소리를 뭉개버리는 대한민국에서 중간 지대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중간 지대가 없는 정치로 인해 국민은 사실상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걸 강요당하는 분위기다.


양당제의 폐해다.


여당이 되면 정부와의 혼연일체를 주장하고, 야당이 되면 정부를 무조건 비판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활동하는 것 역시 양당제의 병폐다.


이런 양당제의 폐단을 극복하고 ‘중간 지대’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선 다당제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소선거구제를 없애고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1개의 선거구에서 2~3인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를 중선거구제, 4인 이상의 다수인을 대표자로 선출하는 제도를 대선거구제라 한다. 이 경우 비교적 소수의 의사도 대표를 선출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소수대표제의 성격을 가지며 사표(死票)를 최소화한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지역 구도가 완화되고 군소정당이나 신생 정당도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다양한 의사가 대변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선거구제 개편과 동시에 거대 양당이 ‘꼼수’로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자 곧바로 민주당도 위성 정당을 만들어 버렸고, 그로 인해 비례대표마저 양당이 사실상 ‘싹쓸이’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민주당이 169석의 거대 의석을 지닌 ‘공룡 정당’이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위성 정당 탓이다.


이로써 민주당은 원내 1당이 돼 국회의장 자리를 가져가게 된 데다가 막강한 입법 추진력을 손에 거머쥐게 됐다. 한마디로 '재적의원 과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이 가능한 대부분의 사안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5분의 3 찬성'을 기준으로 하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은 물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중단도 다른 당과의 연합 없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입법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위성 정당을 통한 비례의석 확보가 가능한 탓이다. 그런데 위성 정당을 먼저 만든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다. 따라서 민주당만을 탓할 게 못 된다.


특히 지난 총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반쪽짜리 연동형비례대표제(연비제)를 이제는 온전한 연비제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제3지대 정당이 탄생할 공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그때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전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당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 온전한 연비제를 도입했더라면, 그리고 위성 정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169석 슈퍼 괴물 민주당’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제는 거대 양당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당제의 길을 열어야 할 때다.


소 선거구제를 중-대 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문제와 반쪽 연비제를 100% 연비제로 돌려놓는 문제를 여야가 머리를 맞대어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위성 정당을 만들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민이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시점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패거리 정치에 익숙한 양측 ‘팬덤’ 지지층 모두로부터 돌팔매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쉬쉬’하고 넘어가지 않겠다. 양극단의 정치를 바로잡아 중간 지대를 만들고, 그로 인해 국민갈등을 조정할 수만 있다면 그 돌팔매를 기꺼이 맞을 용의가 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젊은이들을 보면서 국민이 느끼는 아픔에 비하면 이런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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